단종 품은 '역적' 엄흥도, 어떻게 '충신'으로 부활했나

[사극에 바란다 ③] '왕과 사는 남자'로 본 역사의 쓸모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 '왕과 사는 남자' 엄흥도는 사실 '촌장'이 아니었다?
② 단종은 왜 하필 '육지 속의 섬' 청령포에 유배됐을까
③ 단종 품은 '역적' 엄흥도, 어떻게 '충신'으로 부활했나
(계속)

단종이 유배지 영월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 시신을 건드리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호장 엄흥도는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서슬 푸른 권력을 피해 고향을 등진다.

엄흥도는 왜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을까.

권기중 한성대학교 역사문화큐레이션트랙 교수는 "관련 사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엄흥도가 왜, 어떻게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면서도 "유배인 관리 책임이 호장인 엄흥도에게 있었으니, 그가 단종과 밀접하게 교류하면서 유대를 쌓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호장은 그 당시 지식인 계층으로서 기본적으로 성리학과 유학에서 강조하는 충, 효와 같은 가치를 받들었을 것"이라며 "당대 사육신이나 생육신처럼 엄흥도 역시 배움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충성심을 당연히 지니지 않았을까"라고 봤다.

이상균 강릉원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이 강원도 삼척 금덕면 궁촌에서 사약을 마시고 죽었는데, 묘가 그곳에 있었다"며 "공양왕 시신을 누가 수습했을까를 생각해 봤을 때, 왕처럼 중요한 인물이 죽으면 누군가는 몰래 그 일을 행했을 수 있는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후대 기록에 따르면 엄흥도가 단종을 매장한 것은 사실로 볼 수 있다"며 "그러나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왜 수습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 모든 과정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

'세조의 후손' 숙종은 왜 단종을 복위시켰을까


역적으로 몰린 단종과 엄흥도 등이 복권된 것은 단종이 죽고 2백년을 훌쩍 넘긴 숙종 대에 이르러서다. 공교롭게도 숙종은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의 후손이었다.

이상균 교수는 "세조 후손인 숙종이 단종을 복위시키면 정통성을 부정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며 "이로 인해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성심을 강조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숙종 대에 환국(왕권을 강화하려고 여러 당파로 권력을 교체하면서 정국을 주도하는 정치 형태)이 가장 많이 일어났는데, 사육신과 엄흥도를 충절의 표상으로 내세운 데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왕에게 충성하라는 뜻이 다분했다"며 "다만 엄흥도가 사육신과 같은 반열에 오르지 못한 데는 호장이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신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권기중 교수 역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을 겪은 뒤 무너진 나라 기강을 다시 세우려던 숙종 대에는 충신, 효자를 치켜세우면서 유교 국가로의 복귀를 꾀했다"며 "그 과정 속에서 단종을 복위시키고 엄흥도를 발굴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조선후기 실학자 이긍익은 정사, 야사를 모조리 끌어모아 '연려실기술'을 썼는데, 그것을 장항준 감독이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활짝 꽃피웠으니 크게 축하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올빼미' 스틸컷. NEW 제공

"역사 인물 입체적 복원…인간이란 무엇인가"


소현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다룬 사극 영화 '올빼미'(2022). 이 작품은 개봉 당시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화제를 모았다. '올빼미'의 역사 자문을 맡은 이가 김근하 서강대학교 HUSS포용사회사업단 연구교수다.

김 교수는 "당시 제작진은 '이것이 역사적 사실인지'에 대한 것들, 말 그대로 사실관계를 많이 물었다"며 "자문은 사료 등을 꼼꼼히 살펴본 뒤 찾은 결과물을 전달하는 식으로 이뤄졌다"고 떠올렸다.

그는 "처음 '올빼미' 대본을 받았을 때는 조금 더 극적인 요소들이 많았는데, 역사적인 사실관계와 어긋난 것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며 "이는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지닌 사람이 봤을 때 오히려 몰입을 해치는 요소들이었다. 이 지점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김 교수는 역사학자이면서 웹툰 작가, 유튜브 크리에이터로도 활약 중이다. 사람들이 보다 쉽게 역사를 접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리라.

그는 "대중이자 콘텐츠 생산자 그리고 연구자이기도 한 입장에서 봤을 때, 콘텐츠 생산자와 역사학자에게 각각 기대할 수 있는 역할을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 흐름을 보면 그 구분이 사라진 것 같다. 콘텐츠 생산자에게 역사 연구자 역할을, 반대로 역사학자에게 스토리텔링이나 상업화·대중화를 요구하는 탓"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급기야 일부 콘텐츠 생산자는 마치 자신이 연구를 통해 대단한 사실을 밝혀낸 것처럼 잘못된 역사를 대중에게 전달하기도 한다"며 "그러한 의도로 만든 콘텐츠에 대중이 반응할 수밖에 없으니, 연구자 입장에서는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사극 콘텐츠는 그 시대상이나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등을 제대로만 복원했다면, 사소한 흠결이 있더라도 큰 문제가 안 된다고 본다"며 "그래야만 사람들 공감을 이끌어내고 작품으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라는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에 있다"며 "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주체가 콘텐츠 생산자"라고 말했다.

특히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사료만 봐서는 알 수 없는 단종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복원시켰다"며 "이러한 단종을 보면서 대중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궁극적인 화두에 공감하고 곱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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