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동 사태 여파로 국내 기름값이 2천 원대를 위협하자 석유 최고가격제를 이번 주 전격 시행한다. 최고가격 지정제는 유가 자유화 조치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국제 시세에 일정 마진을 더해 정유사의 공급가 상한선을 정하는 방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가격 통제로 정유사 국내 물량이 해외로 쏠려 공급망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주 중 최고가격제 시행…'싱가포르 시세+α' 검토
11일 산업통상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주 중으로 '석유 최고가격 지정제'를 시행할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석유사업법에 근거해 관련 고시 제정 절차에 착수했다"며 "이번 주 내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최고가격 지정제가 실제 시행되면, 이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조치 이후 정부가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30년 만의 첫 사례다. 그동안 국내 기름값은 정유사와 주유소가 시장 상황에 맞춰 자율적으로 결정해 왔으나,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유가가 치솟으면서 임계점을 넘어 극약처방을 내린 것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전날 오후 2시 기준 서울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는 리터당 1949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은 1971원으로 휘발유를 넘어섰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싱가포르 현물 시장 가격 등 국제 시세에 일정 마진을 더해 정유사의 공급가 상한선을 정하는 방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주유소의 경우 직영, 알뜰주요소 등 운영 방식이 다양하고 지역별 임대료·물류비 차이로 일괄적인 가격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가격 형성 시점인 정유사 공급가를 제한해 주유소의 원가 부담을 낮춰 소비자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최고가격제 주기는 2주 단위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청와대 김용범 정책실장은 9일 브리핑에서 "기본적으로는 2주 주기로 설계하려고 한다"며 "2주 간격으로 최고가격을 조정하면서 유류세 인하 등을 통해 가격 출렁임을 막는 완충 조치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공급부족 사태·재정 부담 우려도
정부의 강도 높은 개입 예고에 정유업계에서는 공급망 왜곡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가 정한 상한선이 국제 원유 가격보다 낮을 경우 국내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일부 정유 업체는 국내 공급 물량을 줄이는 대신 가격 제한이 없고 수익성이 높은 해외로 물량을 돌릴 수 있다.
이에 정부는 가격 제한으로 발생하는 정유사의 실질적인 손실에 대해 일정 부분 재정으로 보전해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면 추가경예산(추경)안까지 끌어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유류세 추가 인하와 소비자 직접 지원 방안을 병행할 계획이다. 김 실장은 "현재 시행 중인 유류세 인하 폭을 추가로 확대하는 조치와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 직접 지원 방안 등을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며 "국제 유가가 2주 간격으로 크게 변동할 경우 유류세 인하 등을 신축적으로 운용해 시장의 충격을 완충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유사에 대한 손실 보전 규모에 따라 정부의 재정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동 사태가 장기화해 국제 유가가 계속 오를 경우, 정부가 메워줘야 할 차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전면적인 가격 제한 조치를 취할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당장 우선은 비축유 공급이나 유류세 추가 인하와 같은 조치가 우선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