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흑역사로 남은 검찰의 선언이다. 전두환 세력의 군사반란·내란·내란목적살인을 수사한 뒤 1995년 7월 검찰은 이런 결론을 내놨다. 훗날 "기자가 그렇게 묻기에 '그렇다'고 했을 뿐"이라는 해명을 내놨지만, 달라질 것은 없다.
검찰이 틀렸음을 확인시킨 것은 국회와 법원이었다. 국회가 특별법을 제정해 수사의 길을 다시 열어 전두환 일당을 법정에 서게 만들었다. 법원은 내란세력을 단죄하면서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내란죄는 처벌된다는 원칙을 세웠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확립한 판례는 오늘날 12·3 내란 재판에도 엄연히 적용된다.
그런데 검찰의 고집이었을까, 문제의 선언이 19년 뒤 미묘하게 되살아난다. 2014년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쿠데타나 혁명이 성공하면 처벌이 불가능해진다"고 논고를 폈다. 예비·음모 단계도 엄벌이 필요하다는 취지였지만, 이미 확립된 대법원 판례에는 어긋나는 논리였다.
이쯤 되면 '성공 범죄는 처벌 불가'가 검찰의 전통적 가치관이라도 되는지 궁금해진다. 헌정 파괴 범죄조차 권력 장악 여부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위험한 논리 전개도 가능해진다. '우리 편'이 저지른 내란을 성공시켜 면죄부를 준다거나, 이를 통해 자신의 죄책을 덜겠다는 헛된 상상으로까지 말이다.
이런 의심에 기반해 12·3 내란 당시 법무부 장관이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또 '기상천외한 시간 계산' 끝에 구속 취소를 결정한 재판부에 항고하지 않은 채,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을 석방시켰던 당시 검찰 수뇌부가 지탄받은 것도 비슷한 의심을 배경으로 한다.
하필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 검찰의 '우리 편 봐주기' 논란이 극대화했다. 대표적으로 영부인 대상의 각종 수사에서는 처리 지연, 방문 조사, 무혐의 판단 등 단계마다 논란이 불거졌다. 반면 비판세력에는 대대적이고 치밀한 수사가 벌어졌다. '선택적 정의' 논란이 반복될수록 검찰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도 흔들렸다.
게다가 그 정권에서는 '우리 편 챙기기'도 활발해, 전직 검사들이 법무부·검찰 외 정부기관에 다수 진출했다.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직무 전문성이 요구되는 요직까지 장악하면서 '검찰정권'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국가기관을 특정 직업집단이 독과점한다는 우려였다.
이런 경험들이 누적되면서 제도를 고치자는 여론이 강화됐다. 정권교체 이후 검찰개혁이 다시 핵심 정치의제로 떠오른 게 이 때문이다. 현재 논의되는 방안은 검찰을 기소 중심의 공소기관으로 재편하고, 수사 기능은 사실상 이관하는 게 핵심이다. 보완수사권 범위 논쟁은 남았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장악한 기존 체제가 유지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더라도 검찰청이든 공소청이든 새 조직에 남겨질 기소권은 여전히 형사사법 체계의 핵심 권력이다. 기소권을 행사해 특정인을 형사재판 피고인으로 내몰 수 있는 게 권력이고, 반대로 기소하지 않는 방식으로 특정인에게 재판도 처벌도 면제시켜줄 수 있는 것 역시 권력이다.
국민이 주목하는 것은 권한의 이동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사법정의의 실현 여부다. 중요한 것은 검찰 스스로의 태도일 것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관념이 이제는 사라졌는지, 조직 어딘가에 잔존하는지 성찰해야 한다. 흑역사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 검찰청이 되든 공소청이 되든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