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승리로 무려 17년 만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에 진출한 한국 야구. 복병 호주를 2실점 이내로 묶고 5점 차 이상 승리를 거둬야 하는 '미션 임파서블'을 완수하며 저력을 뽐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조별 리그 호주와 C조 4차전에서 7-2 승리를 거뒀다. 이미 3승을 거둔 일본에 이어 C조 2위로 8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한국은 2승 2패로 호주, 대만과 동률을 이뤘다. 이 경우 동률 팀끼리 맞대결에서 나온 실점을 아웃 카운트로 나눈 결과로 순위를 가리는데 한국이 실점률이 가장 낮았다. 3개국은 상호 맞대결에서 모두 7실점을 기록했으나 한국은 두 팀보다 1이닝이 많은 19이닝을 치렀다.
2009년 이후 17년 만의 WBC 본선행이었다. 한국 야구는 2006년 1회 대회 4강 신화를 쓰고,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이후 3회 연속 1회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주장 이정후(샌프란시스코)의 투혼이 한국 야구를 살렸다. 3회초 1타점 2루타를 때린 이정후는 특히 9회말 수비에서 존재감을 뽐냈다. 1사 1루에서 호주 릭슨 윈그로브의 잘 맞은 우중간 타구가 나왔는데 중견수에서 우익수로 옮긴 이정후가 몸을 날려 잡아냈다. 만약 빠졌다면 1점을 줄 수도 있던 타구였다.
스코어가 7-3이 됐다면 한국은 이겨도 본선에 오를 수 없었다. 실점률에서 뒤져 C조 2위를 내줘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이정후의 육탄 수비로 기어이 본선이 열리는 미국 마이애미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일본 언론도 주목한 이정후의 호수비였다.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니치 아넥스는 경기 후 "이정후가 슬라이딩하며 슈퍼 캐치, 빠지면 운명이 달라지던 타구를 제대로 처리해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고 조명했다. 이어 "오타니 쇼헤이의 LA 다저스 동료 김혜성이 왼 손가락 부상으로 빠지고, 선발 투수 손주영(LG)가 강판하는 역경을 딛고 마이애미행 티켓을 잡았다"고 전했다.
특히 이 매체는 "경기 종료 직후 이정후가 글러브로 얼굴을 가리고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일본 SNS에서도 감동으로 퍼졌다"고 전했다. 이어 "주저 앉는 이정후에게 달려드는 선수들 너무 좋다" "이정후가 경기 종료 후 울면서 고개를 숙일 때 팀 모두 이정후에게 달려오는 장면에 통곡" "이정후 너무 멋있는 슈퍼 스타" 등 X(옛 트위터)에 나온 반응을 소개했다.
사실 이정후는 앞선 9회초 공격 때 하마터면 역적이 될 뻔했다. 8회말 1점을 내준 한국으로서는 마지막 공격에서 최소 1점을 뽑아야 했다. 1사 1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정후는 투수 쪽 땅볼을 쳤고, 병살타로 이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타구가 호주 투수 잭 오러클린의 글러브를 맞고 튀었고, 유격수 제리드 데일이 잡아 급하게 2루로 던진 공이 실책이 되면서 1사 1, 3루가 됐다. 이후 안현민(kt)의 희생타가 나오면서 한국은 사실상의 결승점을 얻었다.
이어진 9회말 이정후는 천금의 수비를 펼쳤다. 만약 앞선 타석에서 병살타를 쳤다면 오지 않았을 기회를 만점 수비로 만회했다. 일본 매체 '더 앤서'는 "내가 '참사의 주역'이 될 뻔했는데 한국 동료들의 기운으로 이겼던 것 같다"는 이정후의 멘트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