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보다 비싼 경유…화물 기사·농가 직격탄

부산 6일부터 '경윳값 역전' 현상
연료비 비중 높은 업종 수익 감소 불가피

9일 부산 사하구의 한 주유소 전광판에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70원 높게 표시돼있다. 정혜린 기자

이란 사태 여파로 휘발유보다 저렴하던 경유 가격이 더 빠르게 치솟으면서 연료비 비중이 높은 업종이 직격탄을 맞았다. 전쟁 상황이 장기화하면 경윳값 역전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운송업 종사자나 지역 농가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9일 부산 사하구 한 주유소. 전광판에 '휘발유 1879원', '경유 1949원'으로 경유가 70원 더 비싸게 표시돼 있다. 기름을 채우러 온 화물차 기사들은 경유 가격이 연일 치솟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화물차로 선박에 물품을 납품하는 송영철(64·남)씨는 "경유 가격이 심각하게 많이 올랐다. 보통 한 번에 7만 원어치 넣는데, 지금 5만 원밖에 못 넣었다"며 "차를 움직여야 돈을 벌 수 있으니 주유를 안 할 수도 없다. 기름값 부담 때문에 덜 움직이려다 보니 일에도 지장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 이후로 국내 기름값이 연일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가운데, 특히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더 빨리 오르는 추세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을 보면 부산에서는 지난 6일 휘발유 1866원, 경유 1880원으로 경유가 휘발유를 처음 역전한 뒤, 지금까지 경유가 더 비싸다. 9일 기준 휘발유 1879원, 경유 1898원으로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치솟는 경윳값은 화물차나 택배기사 등 운송 노동자 수익 감소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화물차 기사 이종화(50대·남)씨는 "운송료는 똑같은데 기름값은 많이 오르다 보니 체감상 손해를 많이 본다. 그렇다고 운송료를 같이 올릴 수도 없고, 한동안은 손해 보면서 일을 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택배기사 정종식(39·남)씨도 "주유비가 체감될 정도로 크게 늘 것 같은데, 수수료는 같으니 실질 임금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기름을 아끼기 위해 중간에 시동을 꺼둔 채 배송 다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9일 오전 부산 사하구의 한 주유소에 경유 ℓ당 가격이 1999원으로 적혀있다. 정혜린 기자

비닐하우스 난방이나 생산물 수확 등에 중유와 등유, 경유 등 기름을 많이 쓰는 지역 농가도 한숨이 커지는 실정이다.
 
부산 강서구 특산품 '대저짭짤이토마토'를 재배하는 배명훈(43·남)씨는 "비닐하우스 안 온도를 8~9도로 유지해야 해 지금도 난방을 하고 있는데, 기름을 한 번 더 채워넣어야 하나 이대로 버텨야 하나 고민이 크다"며 "난방비뿐 아니라 토마토를 밭에서 선별장으로 옮기는 트럭이나 모내기 등 작업에 사용할 트랙터·이양기 등에도 다 기름을 써야 해 앞으로 더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부산 강서구에서 국화를 재배하는 선경석(69·남)씨도 "화훼 농가는 난방 때문에 기름값을 1년에 3500~5천만 원 정도 쓰는데 규모가 크니까 기름값이 조금만 올라도 영향이 크다. 한겨울이었으면 재배를 아예 포기했어야 한다"며 "수입 꽃이 늘어나면서 화훼 농가가 타격을 받아 급격히 줄고 있는데 고유가까지 겹쳐 화훼 농가가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고 호소했다.
 
휘발유는 주로 개인 자동차 연료로 쓰여 가격이 오르면 수요 조절이 가능하지만, 경유는 산업 전반에 널리 사용되는 연료라 수요를 줄이기 어렵다. 또 군용 장비에 주로 쓰이는 특성상 전쟁이 발생하면 수요가 늘어 가격이 빠르게 오른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국제 경유 가격이 급등한 바 있다. 만약 '이란 사태'가 장기화하면 경윳값 역전 현상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국내 유가 급등으로 민생 경제에 큰 타격이 예상되자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국내 석유 시장 점검을 위한 '중동 상황 대응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국제유가 상승에 편승해 민생물가 안정에 역행하는 행위에 대해 엄정히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6일부터 범부처 석유시장 점검단을 구성해 정량 미달, 가짜 석유, 가격 담합, 세금 탈루 등 불법행위를 단속하고 2천여개 주요소를 대상으로 특별 현장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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