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주민투표, 지방선거와 함께 묻자…"정보 비대칭·졸속 투표" 우려도

"정치권 공방 1년, 이제 결정권 주민에게 돌려줘야"
지선 동시 실시 땐 300억 절감·투표율 문제 한번에 해결…법 개정이 관건
투표지 한 장으로 통합 결판낼 수 있나…제도·내용 양면의 숙제 남아
"가부만 묻는 투표, 통합 전제로 설계된 논의…충분한 숙의 선행돼야"

대전시의회·충남도의회 의장 공동 기자회견에서 자리에 시민들이 통합 반대와 주민투표를 주장하는 피켓(글판 시위)을 들고 있다. 고형석 기자

충남·대전 행정 통합 논의가 1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여전히 진통을 겪는 가운데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주민투표를 병행해 통합 찬반을 직접 묻자는 주장이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다.

핵심은 지방선거일 전 60일 이내 주민투표를 금지한 주민투표법을 개정해 비용과 투표율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자는 것이다.

통합 논의, 왜 주민투표로 귀결되나

충남·대전 행정 통합 논의가 1년 넘게 이어지는 동안 정작 당사자인 주민들의 의견은 제대로 수렴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여야가 각자의 정략적 계산을 앞세워 찬반 공방을 반복하는 사이, 통합의 진짜 주체인 시민들은 구경꾼으로 밀려났다는 의미다.

지난달 대전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행정 통합 타운홀미팅에서 발언에 나선 한 시민은 "대전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대전시에서 낸 법안이 더 좋은지, 더불어민주당 법안이 좋은지 이걸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 안에 주민들의 진정한 동의가 들어가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정부의 방향은 일단 통합해 보고 나중에 개선하자는 식인 것 같은데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적정한 동의가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주민투표를 통해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전시 자체 여론조사에서 통합 반대(41.5%)가 찬성(33.7%)을 앞선 결과가 나온 것도 주민 공감대 형성 없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투표를 통해 찬반을 명확히 가리고 그 결과를 통합 결정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대전지역 5개 시민사회단체 시민공청회 요구.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제공

지방선거와 동시에…비용·투표율 문제 동시 해결

주민투표를 별도로 할 경우 300억 원가량의 예산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주민투표법상 법적 성립 요건인 투표율 33%를 충족시키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실제로 과거 주민투표 사례에서 낮은 투표율로 개표조차 못 한 경우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별도 투표는 현실적으로 위험이 크다.

반면 지방선거와 동시에 할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투표지 한 장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별도로 하는 것보다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방선거 투표율이 통상 50%를 웃도는 점을 감안하면 성립 요건인 33%를 넘기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전망이 뒤를 받친다.

권오철 중부대 교수는 "지방선거와 병행하면 예산도 절감하고 투표율 미달에 따른 위험도 피할 수 있다"며 "주민투표법 15조만 개정하면 현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충남대전통합특별법안 제출. 연합뉴스

주민투표법, 개정 가능할까

현행 주민투표법은 선거일 전 60일부터 선거일까지 주민투표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거와 주민투표가 겹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다.

행정안전부와 법제처 등에 따르면 이를 올해 지방선거일로부터 역산하면 4월 3일까지 주민투표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주민투표를 한다 하더라도 의회 절차 등을 고려해 통상 3개월 정도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방선거 전 주민투표는 쉽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 조항을 개정하거나 특례 조문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열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행정 통합 특별법 자체에도 수백 개의 특례 조문을 담는 것이 가능하다면 주민투표법 개정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권오철 교수는 "특례 몇백 개도 담는 마당에 주민투표법 15조 하나 개정 못 할 이유가 없다"며 "정치적 의지의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대전·충남 행정 통합 타운홀미팅에서 이장우 대전시장이 발언하고 있다. 대전시 제공

출마 예정자들도 '2028년 통합' 방향 제시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박범계·장종태 의원은 "12일까지 통합 특별법 통과에 노력하겠다"면서도 "행정 통합이 전제된다면 2년 단임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2028년 국회의원 선거를 의식한 발언으로 보이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뒤 2년 내 통합을 완수하고 이 기간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진다.

이장우 대전시장도 "시간에 쫓기지 말고 충분히 국민 의견을 들어가며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자"며 충분한 숙의를 통한 진짜 통합을 제안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20조 원 등 정부 인센티브를 빼앗긴 책임론을 감당하더라도 졸속 통합보다는 제대로 된 통합을 하겠다는 명분을 살리겠다는 의중으로 읽힌다.

통합 시기와 관련해 이뤄진 대전시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5년 이상 장기 검토 후 추진'이 38.4%로 가장 두드러졌지만, '2년 후 출범'이 26.5%를 차지하며 적지 않은 응답을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에 통합 논의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정세영 기자

주민투표, 통합 논의 새로운 출구 될 수 있나

주민투표 병행은 교착 상태에 빠진 통합 논의에 새로운 출구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여야가 정략적 셈법에서 벗어나 통합 여부의 결정을 주민에게 돌려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찬성이든 반대든 주민 스스로 내린 결론은 어느 쪽도 부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치적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있다. 개정을 위한 여야 합의가 선행돼야 하고 투표 문안 작성과 찬반 기준 설정 등 실무적 준비도 촉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합 논의가 정치권의 네 탓 공방으로 소비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주민 직접 참여를 통한 해법이 가장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결론 도출 방식이라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권오철 교수는 "주민투표를 통해 시민이 직접 통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야말로 1년 넘게 이어진 정치권 공방을 끝낼 수 있는 가장 깔끔한 해법"이라며 "개정 하나로 모든 논란을 정리할 수 있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태흠 충남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이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대전·충남 졸속 통합 반대 범 시·도민 총궐기대회'에 참석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정보 비대칭·졸속 우려 반론도…"충분한 숙의 없인 판단 근거 못 돼"

주민투표 병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제도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용으로 봤을 때 찬성과 반대, 가부만을 묻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지방선거 국면에서 각 후보가 통합을 염두에 둔 다양한 공약과 의견을 쏟아낼 경우, 주민들이 통합의 실체와 파급효과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근거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은 채 투표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대립한 현 상황에서 편향된 정보만 넘쳐나는 선거판 한복판에 주민투표를 끼워 넣는 것은 오히려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의 통합 논의가 처음부터 통합을 전제로 설계돼 왔다는 점도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받는다.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은 논의됐지만, 통합을 하지 않았을 때의 대안과 반대 논거는 공론장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투표가 치러진다면 진정한 가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통합을 전제로 한 찬반 확인 절차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주민투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정보 제공과 숙의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민병기 대전대 교수는 "내용상으로 봤을 때 주민투표는 가부만 묻는 것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가뜩이나 통합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은 채 치러지는 주민투표 결과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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