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 대신 '성상품화'…법 밖에 놓인 여성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지난해 5월 19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MBC 기상캐스터였던 고(故) 오요안나씨 특별감독결과 규탄 기자회견에서 오씨의 어머니 장연미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주된 시청층이 남성인 경우, 그들을 끌어들일 만한 진행자가 필요하니까 항상 그 일정한 나이대의 여성을 원하는 것 같아요. 그냥 거의 아이돌 준비생만큼 외모에 대한 그런 강박도 압박도 심한 것 같아요. 근데 또 이런 얘기를 할 수 없는 게 너희가 선택한 일이잖아 라는 반응이라서…." _참여자 A
 
"특히 기상캐스터 옷을 막 파이고 이런 걸 일부러 보내주는 업체도 있어요. 왜냐하면, 그러면 유명해져서 옷도 이렇게 좀 이렇게 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일부러 그렇게 보내주면 저는 그게 싫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제 옷을 좀 구비를 해놨었어요." _참여자 C
 
전문직이 아닌 소모품으로, 법이 인정하는 노동자가 아닌 법 밖에 존재하는 일하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게 프리랜서 여성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다. 방송이 그들을 성적대상화하며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이게 만든 구조적 문제를 타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5일 국회에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프리랜서 아나운서·기상캐스터 노동실태' 토론회에서는 여성 프리랜서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가 처한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였다.
 

대부분이 정규직 아닌 '계약직'…체형 관리 압박에 성희롱까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지난해 7~8월, 프리랜서(비정규직) 아나운서·기상캐스터 경험자 9명(전원 여성, 평균 만 30.1세)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은 만성적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방송사 29곳 중 정규직 계약은 단 3곳으로, 대부분 6개월~1년 단위 용역계약을 반복 갱신했다. 아나운서의 경우 갱신기대권 발생을 차단하기 위해 2년을 넘기지 않는 관행이 고착화된 상황이다.
 
뉴스 진행 외에 원고 작성, 섭외, 편집, CG 의뢰 등 다중 업무 수행이 일반적임에도 월 소득은 최저임금 이하 수준인 100~200만 원에 불과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신 노출 포맷(기상캐스터)으로 인한 체형 관리 압박 역시 일상이다. 선발 기준에 외모·나이가 암묵적으로 작동했고, 여성 채용 연령 상한은 사실상 26~28세다. 반면 남성은 30~33세로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들은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사이버불링을 당해도 대처할 방법이 없다. 평판 위협을 통한 갑질과 계약 갱신을 빌미로 한 권력 남용에 처해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오요안나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 끝에 세상을 떠났지만, 고용노동부는 오 캐스터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근로기준법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괴롭힘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근로자'가 아니라 MBC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프리랜서 아나운서·기상캐스터 노동실태 토론회. 최영주 기자
 

잘못된 구조 쌓아온 방송사…"네 선택" 아닌 구조적 문제

 
이러한 현실, 특히 젊은 여성 프리랜서 노동자의 이른바 '꾸밈노동'을 두고 인터뷰 대상자의 말처럼 일각에서는 "네 선택"이라고 반박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원해서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며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여성노동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여성노동자를 전문직이 아닌 '상품' 내지 '소모품'처럼 대해 온 방송사의 태도와 시선이 근본 원인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레나 사무처장은 "여성 진행자들이 남성 진행자와는 다른 수위의 옷을 입고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 까닭은 하나다. 바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성차별적인 편견이 공고한 사회 인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꾸밈노동은 여성노동자들이 '원해서'라는 이유로 자발적인 것처럼 포장되기가 너무나도 쉽다"며 "만약 방송 업계가 성평등한 인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여성노동자의 외모 중심이 아닌 역량과 업무량에 대한 배치를 고려해 여성노동자들을 고용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방송산업이 프리랜서 아나운서·기상캐스터 직군 노동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레나 사무처장은 "이는 전문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문성을 인정하는 순간 고용 안정성을 담보해야 하고, 사용자 책임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되면 숙련도는 축적되거나 인정되지 않으며, 교체는 자연스러워지고, 임금은 낮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러면 여성의 노동은 처음부터 '전문성'이 아니라 '소모품'으로 설계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 연합뉴스
 

모든 일하는 사람을 보호할 법과 구조 개선 필요

 
결국 해법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여성 프리랜서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의 노동자성, 달리 말해 법에서 말하는 '근로자성'을 인정해야 한다.
 
일하는시민연구소 김종진 소장은 "고용 불안정이 해소되지 않는 한 성차별·괴롭힘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악순환이 지속되므로, 고용 안정 및 권리보장을 위한 제도적 과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사 프리랜서 고용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및 전문가 TF를 구성할 것과 함께 방송통신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지난 2020년 도입했던 지상파 방송사 재허가 조건 중 '비정규직(계약직 파견직 프리랜서 등) 인력 현황 및 근로실태 파악 자료 제출' 및 '정규직 처우 개선방안 마련' 조항을 복원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조항은 문재인 정부 때 마련했으나, 윤석열 정부에서 삭제했다.
 
김 소장은 "보편적 프리랜서 권리를 위한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제정과 각기 개별 혹은 업무별 근로자성 추정에 따른 근로자 전환 등의 과정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방송사의 정기적인 비정규 및 프리랜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이행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견과 관련해 고용노동부 송유나 근로기준 정책과장은 "노동부에서 지상파 재허가 조건과 관련해 방미통위와 협의했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프리랜서가 근로자성 문제와 별개로, 생계 유지를 위한 최저·적정 보수 가이드라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부에서도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 업종별 보수 가이드라인을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또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을 제정하려고 한다. 일하는 모든 사람은 근로자건, 노동자건 관계없이 일터에서 정당하게 대우를 받고 괴롭힘 받지 않을 권리를 명문화하는 것"이라며 "또 국제노동기구(ILO) 190호(폭력과 괴롭힘) 협약도 비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내법은 어떻게 개정되어야 할지 방향성을 조속히 설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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