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간 전쟁 등으로 중동 정세가 전면전의 기로에 서면서 부산 경제에도 먹구름이 짙게 깔리고 있다. 직접적인 대(對)중동 수출입 비중은 낮아 당장의 실물 경제 타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환율과 유가라는 '거시경제의 두 축'이 흔들리면서 지역 제조업과 해운물류 업계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1500원 선' 위협하는 고환율… 기업들 "버틸 힘 바닥"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금융시장이다. 최근 환율이 장중 1470원을 돌파하고 일시적으로 1500원 선까지 위협하면서 지역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부산 지역 제조업체들은 그동안 1400원대 중반의 고환율에 어느 정도 내성을 키워왔으나, 1500원이라는 상징적 저항선이 무너질 경우 구조적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부산의 한 경제계 관계자는 "정부가 1500원 밑으로 관리하려 하겠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정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며 "수입 원자재 비중이 높은 지역 기업들에게 고환율은 곧 수익성 악화와 직결된다"고 우려했다.
유가 폭등의 시간차 공격… '석유 의존' 제조업 직격탄
유가 문제는 더욱 치명적이다. 우리나라가 도입하는 원유의 대부분이 중동 두바이유다. 최대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에너지 쇼크'는 피할 수 없다. 유가는 선물 거래 특성상 약 한 달 정도의 시차를 두고 반영되지만, 전쟁이 두세 달 이상 장기화될 경우 부산의 주력 산업인 철강, 자동차 부품, 화학 관련 업종은 고비용 구조에 갇히게 된다.특히 부산에는 석유 정제 시설은 없으나 윤활유, 도료(페인트), 고무 등 석유 화학 제품을 가공하는 업체가 산재해 있다. 또한, 에너지 소비가 많은 철강 인프라 소재 산업 역시 투자 위축과 수요 감소라는 이중고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해운물류 업계는 이미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섰다. 중동 지역의 긴장 수위가 높아지면서 할증료 부과와 운항 경로 우회 등으로 물류비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SM상선 등 지역 기반 해운사들은 단계별 대응 전략을 가동하며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으나, 미사일 공격 등 물리적 위협 앞에서는 민간 기업의 대응에 한계가 뚜렷하다.
자동차 부품업계, 물량 감소·원가 압박·고유가·고환율 '사중고'
부산 지역 경제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하는 자동차 부품업계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중동발 위기가 장기화할 경우 완성차 업체의 생산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고, 이는 곧 지역 부품사들의 물량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이다.현대차·기아 등 완성차 대기업의 중동 수출 물량이 위축되면, 하위 협력사들은 밸류체인(가치사슬) 하단에서 직격탄을 맞는다. 대기업의 주문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고유가로 인한 제조 원가 압박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고환율로 인한 원자재 수입 비용 상승과 물류비 폭등까지 더해지며 지역 부품사들은 이른바 '사중고(물량 감소·원가 압박·고유가·고환율)'에 시달리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고금리로 기초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물량까지 줄어들면 공장 가동률을 유지하기 힘들다"며 "중동 전쟁이 장기화되어 수출길이 막히고 물류비가 계속 오르면 중소 협력사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단기 영향은 제한적, 장기화 시 산업 생태계 위협
부산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부산 지역의 중동 직접 수출 비중은 전체의 약 5% 이내로, 100억 원 이상 수출하는 중동향 제조업체는 약 75개소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수출 규모 자체가 다른 지역에 비해 크지 않아 당장의 '수출 절벽'은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장기적인 거시 변수의 악화'로 규정한다. 심재운 부산상공회의소 경제정책본부장은 "단기적으로는 부산 기업들과 중동 간의 연관성이 높지 않아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 유가와 환율이 지역 경제 전반을 흔드는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다. 특히 석유 의존도가 높은 부산의 제조 공정 특성상 원재료비 상승은 피할 수 없는 숙제다. 지자체와 유관기관은 수출입 물동량 모니터링을 넘어, 고환율·고유가 장기화에 대비한 금융 지원책을 선제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중동 위기는 부산 경제에 '직접 타격'보다는 환율과 에너지 비용 상승이라는 '간접적 고통'을 길게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고금리에 지친 지역 중소기업들이 이번 중동발 악재를 견뎌낼 수 있을지, 부산 경제의 기초 체력이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