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사르습지 제주 물영아리오름 일대가 무더기로 파헤쳐진 정황이 포착된 가운데, 마을 주민 등이 배수로 작업 과정에서 훼손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행정당국은 불법 훼손이라며 원상복구명령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환경단체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 행정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배수로 작업 과정서 불법 훼손 추정
3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서귀포시 남원읍 물영아리오름 둘레길인 소몰이길 일대 지반 훼손은 2024년 마을 주민 등이 배수로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물영아리오름 해설사 A씨는 "둘레길이 사람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잠긴다는 민원이 들어와 주민 등이 물길을 내고 고사목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던 것으로 안다"며 "행정 허가를 받고 작업한 것으로 들었다"고 설명했다.
곶자왈공유화재단 송관필 상임이사(식물학 박사)도 "파인 형태가 물과 관련 있어 보인다. 탐방로 물 잠김 방지를 위해 만든 거 같다"고 추정했다.
서귀포시 담당 부서들도 최근 야생동물 관련 단체와 함께 현장을 살펴본 결과 야생동물에 의한 훼손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으며, 배수로 작업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문제는 물영아리오름은 산림청 소유 국유림이자 습지보호구역이기 때문에 이유와 목적을 불문하고 행정의 인허가 없이 훼손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둘레길을 조성한 것 외에 이 구역에서 허가가 난 적은 없다"며 "원상복구명령과 수사의뢰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해 행사하면서 훼손은 무관심
해마다 이곳에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온 행정당국이 그동안 이 사안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도 논란이다. 서귀포시는 지난달 1일 세계 습지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으며, 오순문 시장은 지난해 4월 직접 현장을 찾아 생태보전 현황을 점검했다. 이밖에도 매년 습지문화제 등 각종 행사가 이 일대에서 이어지고 있다.관리 주체가 많다 보니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점도 문제다. 습지보호구역인 정상부는 영산강유역환경청이, 이외 구역은 국유림으로 산림청 소유다. 서귀포시 내에서도 공원녹지과의 경우 "탐방로 관리는 기후환경과 소관"이라고 설명한 반면, 기후환경과는 "산지 훼손 여부는 공원녹지과 담당"이라고 했다.
김정도 기후자원정의센터 아크 사무국장은 "주민들이 알아서 물길을 냈다는 점이 잘 납득가지 않는다. 구두상으로라도 행정과 이야기가 오갔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호구역에서 이 같은 훼손이 발생했다면 관리 감독 책임에서 행정도 자유로울 수 없다"며 "사후 조치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점검 체계와 책임 구조를 전반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람사르습지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지정되는 제도로, 물영아리오름은 멸종위기 동식물 서식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6년 우리나라 5호이자 제주도 1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지난 22일 취재진이 현장을 확인한 결과 둘레길 인근 지반 20여 곳이 가로·세로 1~2m, 깊이 1m가량 파이는 등 곳곳이 훼손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