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조금만 흔들려도 한국 사회는 크게 출렁인다. 금리가 오르면 거래가 얼어붙고, 대출 규제가 완화되면 다시 기대가 살아난다.
지방은 인구 감소를 걱정하고, 수도권은 과밀을 걱정한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마치 매일 체온계를 들여다보는 환자 같다. 숫자는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정작 몸의 체질이 어떤지 묻는 일은 드물다.
전 일본은행 총재 시라카와 마사아키가 쓴 '일본의 30년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부키)는 그 체질을 묻는 책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두고 세계는 오랫동안 이렇게 말했다. "디플레이션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더 과감한 통화 완화가 필요했다는 처방도 따라붙었다. 그러나 시라카와는 다른 지점을 가리킨다. 디플레이션은 증상이었지, 병의 뿌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은 겉으로 안정적이었다. 성장률은 견조했고 물가는 낮았다. 오늘날 한국이 "물가 안정과 성장 회복"을 동시에 바라는 것처럼, 당시 일본도 겉보기엔 균형을 이룬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 자산 가격은 빠르게 부풀고 있었다. 도쿄의 땅값이 미국 전체 토지가치보다 높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낙관은 공기처럼 퍼졌고, 중앙은행 역시 그 공기를 완전히 거스르기는 어려웠다.
버블이 꺼지자 가격만 내려간 것이 아니었다. 담보 가치가 흔들리면서 금융 시스템 전체가 움츠러들었다. 은행은 조심스러워졌고, 기업은 투자를 늦췄으며, 가계는 소비를 줄였다. 돈은 풀렸지만 기대는 살아나지 않았다. 시라카와는 말한다. 통화 정책은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지만, 구조를 바꿔주지는 못한다고.
이 대목은 한국 독자에게 낯설지 않다. 우리 역시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담보로 삼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가계 자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고, 금융 시스템은 주택 담보 대출 위에 세워져 있다.
마이크 버드의 '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알에이치코리아)는 이 구조를 '토지의 덫'이라 부른다. 토지는 가장 안전한 자산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신용을 가장 많이 끌어당기는 자산이기도 하다. 상승기에는 모두를 부자로 보이게 하지만, 하락기에는 가장 먼저 균열을 드러낸다.
한국의 수도권과 지방을 떠올려보면 이 구조는 더 또렷해진다. 수도권 집값은 자산 증식의 상징이 되었고, 지방의 빈집은 축소의 신호가 되었다.
앨런 말라흐의 '축소되는 세계'(사이)는 인구 감소가 시작된 사회에서 부동산은 더 이상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본에서 가구 수 증가보다 훨씬 많은 주택이 지어졌던 현상은 성장의 관성이 만든 결과였다. 성장이 멈추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성장의 속도로 집을 짓고 있는 건 아닐까.
시라카와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인구 구조의 변화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줄어들었다. 더 적은 노동자가 더 많은 고령 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구조에서, 과거와 같은 성장률을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 역시 비슷한 길목에 서 있다. 합계출산율은 1명 아래로 내려왔고, 일부 지방 도시는 이미 인구 감소 국면에 들어섰다. 체온계의 숫자에만 매달릴 수 없는 이유다.
여기서 대런 아세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시공사)와 '좁은 회랑'(시공사)이 다시 질문을 던진다. 국가의 성패는 단기 정책이 아니라 '제도'에 달려 있다고.
강한 정책은 필요하지만, 그 정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합의와 견제의 균형이다. 일본의 경험도, 한국의 현재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문제를 가격으로 보느냐, 구조로 보느냐.
집값은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돈이 어디에 묶여 있는지, 인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국가와 사회가 그 변화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일본의 30년은 공포의 예고편이라기보다, 구조를 읽지 못했을 때 어떤 시간이 흘러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다.
우리는 지금 매일 체온을 재고 있다. 그러나 책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열이 내렸는지보다, 왜 열이 났는지를 먼저 보라고.
일본의 경험을 읽는 일은 남의 실패를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우리 몸의 체질을 점검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30년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시라카와 마사아키 지음 | 부키)
■축소되는 세계 (앨런 말라흐 지음 | 사이)
■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마이크 버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아세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지음 | 시공사)
■좁은 회랑 (대런 아세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지음 | 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