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그리고 이란의 반격으로 중동 정세가 대혼란에 빠져들면서 중동에 원유 공급을 의존해왔던 한국 산업계의 불확실성도 커지는 모양새다.
특히 이란 측이 전세계 핵심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엄포까지 놓으며 긴장감이 높아지자 사태 장기화에 대비한 비상계획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란을 전격적으로 공습해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한 이후 이란의 강 대 강 대응이 이어지면서 중동 정세는 2일까지 사흘째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란군은 이스라엘과 중동 지역 미군 시설에 반격을 가했고, 미국과 이스라엘도 추가 공격을 이어가는 중이다.
특히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CG)는 이번 공습을 계기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 통행을 통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 해협을 지나는 선박 통행량이 기존보다 70%가량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해협 인근에서는 민간 선박이 공격당했다는 사례도 보도됐다. 중동에서 지정학적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부각돼 왔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 되고 있는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20%가 거쳐가는 핵심 운송로다. 특히 한국의 경우 2024년 기준 수입한 원유의 약 70%가 중동산이며, 이 가운데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들어왔다. 이곳이 막히면 유가가 치솟으면서 각종 비용 상승 부담이 확산해 산업계는 물론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현재) 국제유가 상승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은 원유에 대한 중동 의존도가 높은 구조다. (호르무즈 해협의 혼란은) 우리나라 주력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로서는 원유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가 중요 과제이고, 기업들 입장에서는 유가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단계별 비상계획을 수립하는 등 다각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현지시간 2일 오전 기준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 대비 8.95% 가까이 오른 배럴당 73.02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피해 우회할 경우 운임 비용이 최대 80% 가량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는 전날 윤진식 무역협회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고 이번 사태가 한국의 수출입과 해상물류에 끼치는 영향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협회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돼 선박들이 우회 항로를 택할 경우를 가정해 "기존 해상 운임 대비 50~80%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봤다. 또 유가가 10% 상승하면 기업들의 생산 원가가 0.38%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산업통상부도 같은 날 관계부처, 업종별 협회·단체 등과 실물경제 점검회의를 열고 국내 업계 영향을 분석했다. 산업부는 "유조선 등 운항 일정 조정, 우회 항로 확보 등을 포함한 면밀한 상황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현재 정부와 업계는 수개월 분의 비축유와 함께 비축의무량을 웃도는 수준의 가스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당장의 수급 위기 대응력은 충분한 상황"이라면서도 "만일 사태 장기화로 민간 원유재고가 일정비율 이상 감소하는 등 수급위기가 악화되는 경우 산업부는 자체 상황판단회의를 통해 비축유 방출을 결정하고, 여수, 거제 등 9개 비축 기지에 비축된 석유를 국내 시장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재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중동 지역 직원 등의 안전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연휴에도 분주하게 상황 파악에 집중했다. 삼성전자는 이란과 이스라엘에 근무 중이던 직원들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이집트, 요르단 등 인근 국가로 대피시킨 것으로 파악됐다.
LG전자도 이스라엘 지점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과 가족들이 대사관 가이드에 맞춰 대피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란에 파견돼 근무하던 한국인 직원 1명은 최근 출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은 이란에서는 사업을 영위하지 않지만, 인근 사우디아라비아 킹 살만 자동차 산업단지에 중동 지역의 첫 생산 거점인 현대차 사우디 생산법인(HMMME) 공장을 착공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지속해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 UAE, 카타르, 쿠웨이트에 진출해 방산, 금융, 기계 등의 분야에서 사업을 전개 중인 한화그룹도 김승연 회장의 당부에 따라 임직원과 가족의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현지와 실시간 소통 체계를 구축하고, 임직원과 그 가족들의 이동 상황과 안전 여부를 계속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