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우리나라의 상징 태극기는 최근 '태극기 집회', '태극기 부대'라는 말과 함께 안타깝게도 극우의 상징처럼 소비되고 있습니다.
CBS는 3.1절을 맞아 태극기의 진정한 의미와 역사를 돌아보는 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먼저, 태극기 안에 담긴 본래의 뜻과 이를 품어 온 한국교회의 전통을 짚어봅니다.
오요셉 기자입니다.
[기자]
태극기는 19세기말, 조선이 미국 등 서구 열강과 수호 조약을 맺으며 근대 국가로서 첫 발을 내딛는 과정에서 등장했습니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에 청국의 국기와 유사한 국기를 게양할 것을 강요했지만, 조선은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국기를 제작했습니다.
청국의 간섭과 통제를 벗어나 동등한 자주국가로 서겠다는 의지와 독립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대내외적으로 선명히 드러낸 겁니다.
태극기의 중심 문양인 태극과 건곤감리 4괘는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 사상과 주역의 세계관을 담은 상징입니다.
우주 만물이 서로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조화를 이루는 원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홍승표 박사 /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연구이사]
"우주의 다양성이 서로 조화하고, 화합하고, 일치를 모색하는, 대동세상의 가치를 이 태극 사상과 태극 표상이 드러내고 있다, 조화와 통합을 가지고 있는 보편적 메시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태극기 안엔 공동체적 이상도 담겼습니다.
서로 다른 힘이 부딪히지만 이는 상대를 제거하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를 품기 위한 긴장과 균형이란 겁니다.
즉, 태극기는 처음부터 어느 한쪽을 배제하는 깃발이 아니라, 다름을 끌어안는 조화와 관용의 상징이었습니다.
[손승호 박사 /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사무국장]
"사람 마음 안에 있는 태극을 '인극'이라고 불렀거든요. 인격으로서의 인극은 남을 해하지 않고 나를 완성시켜 나가면서, 동시에 타자도 완성시켜 나가는 존재예요. 하나의 주체가 있는 게 아니라, 공동의 주체가 되는 사회를 지향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새롭게 탄생되는 국가의 상징으로서는 매우 적절하다고 여겼을 것 같습니다."
태극기의 정신과 뜻이 민중 속으로 스며드는 과정엔 기독교인 민족지도자들의 역할도 컸습니다.
특히, 1890년대 독립협회의 '독립신문' 발간과 만민공동회 활동 등을 통해 주체적인 시민으로 깨어나 가는 과정 속에서 태극기는 점차 '시민의 깃발'로 자리 잡았습니다.
피동적인 전근대적 백성에서 벗어나, 참여하는 시민으로서의 자발성과 능동성을 자각하는 데 태극기가 중요한 매개체가 됐다는 분석입니다.
[최영근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
"독립협회가 지향하는 시민 민주주의에 기초한 건강한 근대 국가의 이념이 태극기가 상징하는 바고, 상하만민 구분 없이 태극기의 기치 아래 하나의 편안한 나라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자, 이런 것들이 독립협회 때 표출된 태극기가 상징하는 의미라고 할 수가 있겠죠."
초기 한국교회의 태극기 수용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초기 선교사들과 개종자들은 동양적 가치의 보편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태극 사상 같은 동양적 우주관을 무조건 배척하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복음 안에서 완성하려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선교사들이 세운 배재학당, 숭실학교, 경신학교 같은 기독교계 학교들은 공식 행사에서 태극기를 게양했습니다.
한국인들의 역사와 전통, 민족성을 존중하면서, 이 땅을 섬길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신앙적 소명이 자연스럽게 태극기 사용과 연결된 겁니다.
[홍승표 박사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의 고대사회 연구를 엄청나게 깊이 하거든요. 종교혼합주의적인 게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신학적 기조와 관점을 유지하면서, 주체적으로 태극 사상과 태극 상징을 재해석하고, 기독교의 일부로서 그리고 기독교를 선교하는 도구로서 태극을 수용한 거죠. 굉장히 의미 있는 역사라고 봅니다."
조화와 관용, 대동사회의 정신으로 새로운 공동체 비전을 품었던 태극기.
극우의 깃발로 흔들리는 오늘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태극기의 첫 얼굴이었습니다.
CBS 뉴스 오요셉입니다.
[영상기자 이정우 정선택 최내호] [영상편집 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