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에서 판·검사가 법을 왜곡해 적용한 경우 처벌하는 '법왜곡죄법'이 26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사법부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여당은 법리 왜곡을 막고 권한 남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법조계에선 사법권 독립 침해와 법관 직무수행 위축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기존의 낡은 인식에 도전하는 전향적인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무분별한 고소·고발이 남용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향적 판결 주저할 것"…고소·고발 남발 우려도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한 법왜곡죄법은 판사·검사 등의 법 왜곡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법왜곡 행위는 △법령의 적용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적용해 의도적으로 재판·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변조하는 경우 △적법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경우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먼저 법원 내에선 법관의 직무수행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논쟁이 큰 사건을 판단하는데 있어 위축이 될 수 있고,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한 전향적이고 진보적인 판결을 주저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판사들이 판례에 따라 재판을 하지만 기존 판례가 좀 잘못됐다고 생각할 때 거슬러야 하는 경우가 있다.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도 과거와 현재의 소멸시효 판단이 달라지는 것을 예를 들 수 있다"며 "진보적이고 전향적인 판결이 나오는 과정이 있는데, 법왜곡죄를 감안하면 여러 주저스러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법왜곡죄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이미 3심제 체제에선 하급심 오류를 수정하는 등 재판 오류를 시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게 사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법왜곡죄를 의식해 무난하고 안정지향적 판결이 이어지다보면 대법원 판례 형성까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아울러 상급심 법관이 하급심 판결을 깬다면 하급심 법관들이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기에 이를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를 종합하면 3심제 기능이 유명무실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건 관계자들의 고소·고발 남발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권리 구제가 필요한 당사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건 당연히 바람직할 수 있지만 악성 고소·고발이 빗발칠 가능성도 충분하다"며 "한정된 사법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어려울 수 있다"라고 밝혔다.
법왜곡죄법은 과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 직후에도 도입 논의가 이뤄진 바 있다. 하지만 고소·고발 남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등이 커지면서 입법화되진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지귀연 재판부의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과 두달 후인 5월 대법원의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판결 등을 계기로 도입에 속도가 붙게 됐다.
"권한 남용 견제" vs "논쟁 큰 사건, 정치 휘둘릴 수도"
민주당은 법왜곡죄법에 따라 검사나 판사가 법리를 왜곡해 판결·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심우정 전 검찰총장의 즉시항고 포기나 지귀연 재판부의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 등과 같은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지나친 사법권 남용에 대한 견제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반면 형사 절차가 정치적으로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논쟁이 큰 사건에서 정치 진영에 따라 판결을 문제 삼고 법적으로 저항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지귀연 부장판사 뿐만 아니라,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구형량보다 센 징역 23년을 선고한 이진관 부장판사도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위헌 소지도 여전한 논쟁 거리다. '법 왜곡'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이라 헌법이 정한 명확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증거를 조작·인멸하는 등의 행위를 했을 경우 이미 직무유기, 직권남용 등 기존 형법 조항을 통해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잉입법이라는 비판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법왜곡죄 국회 본회의 상정 직전, 법 적용 범위를 형사 사건으로 한정하는 내용으로 수정해 위헌 요소를 최소화했다고 강조하지만 법관들은 "수정 전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반응하고 있다.
한편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법왜곡죄 국회 본회의 통과 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다만 지난 26일 전국 법원장들은 임시회의를 마치고 "수정안을 고려하더라도 범죄 구성요건이 추상적이어서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다"며 "고소·고발이 남발되는 등 심대한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신속한 재판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