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억 달러 '생수 전쟁'…공공 수도는 왜 흔들리나

물 공공성 위기 추적…대니얼 재피 '언보틀드'
가습기살균제 이후…최진희 '완벽한 때는 오지 않는다'


플라스틱병에 담긴 물은 어떻게 3000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 되었을까. 미국 사회학자 대니얼 재피의 신간 '언보틀드'는 지난 40년간 병입생수가 사치재에서 일상 소비재로 변모한 과정을 추적하며, 그 이면에 놓인 공공성·환경·인권 문제를 짚는다.

저자는 10여 년간의 현장 연구를 토대로 병입생수를 '물 상품화'의 상징으로 규정한다. 1980년대 미국의 1인당 소비량은 연 7.5리터 수준이었지만, 2021년에는 178리터로 급증했다. 세계적으로는 매년 5000억 개 이상의 플라스틱병이 버려진다. 기회주의적 마케팅은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이는 공공 인프라 투자 축소와 수질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았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미시간주 플린트의 '납 수돗물 사태'를 비롯한 사례는 물 위기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종·계급 불평등과 결합된 공공성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재난 상황에서 병입생수가 보조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구조적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아를 제공

책은 동시에 병입생수 산업에 맞선 지역 공동체의 물 정의 운동을 조명한다. 공공기관의 생수 판매 금지, 지하수 무단 추출 저지,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 확대 등은 물을 다시 공공의 영역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로 소개된다.

저자는 묻는다. "모든 사람이 감당 가능한 가격으로 깨끗한 물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 기본적 인권인가?" 답이 '그렇다'라면, 식수 접근권은 시장에 맡길 수 없으며 "정의는 플라스틱병에 담겨 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대니얼 재피 지음 | 김승진 옮김 | 아를 | 5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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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때는 오지 않는다."

30년 넘게 독성물질을 연구해온 최진희 독성학자가 내린 결론이다. 신간 '완벽한 때는 오지 않는다'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독성학 교양서로, 독을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의 안전을 설계하는 과학의 언어로 다시 정의한다.

저자는 독성학을 'Chemico-Bio Interactions', 곧 세상과 나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화학물질이 몸속에 들어와 단백질·세포·조직을 거쳐 질병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독성발현경로(AOP)'로 풀어내며, 독성은 물질 자체가 아니라 노출 조건과 개인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의 결과'라고 강조한다.

책은 환경독성학의 관점에서 사전 예방의 중요성을 짚는다. 오염이 발생한 뒤 처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왜 오염이 생겼는가"를 묻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동물실험의 한계를 넘어 고속대량스크리닝, 신규접근법(NAMs) 등 동물대체시험법으로 확장되는 현대 독성학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청과수풀 제공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저자에게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오즈비 47.3이라는 압도적 수치를 마주하며 과학적 인과의 무게를 실감했고, 동시에 시민의 분노와 기업의 반발 사이에서 과학자의 역할을 고민했다. "진짜 독성학자는 실험실 바깥에서도 싸운다"는 고백은 과학이 정책과 사회적 책임으로 이어지는 지점을 상징한다.

책은 독성학을 난해한 전문 영역이 아니라 우리 삶을 지탱하는 '안전의 언어'로 제시한다. 완벽한 증거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아는 사실로 예방을 시작해야 한다는 메시지. 과학과 사회의 경계에서 길을 찾아온 한 독성학자의 기록이다.

최진희 지음 | 청과수풀 |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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