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왜곡죄 신설과 재판소원 도입, 대법관 증원을 묶은 이른바 '사법개혁 3법'이 국회 본회의 처리 수순에 들어간 가운데, 전국 법원장들이 임시회의를 열고 법안 전반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사법개혁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사법 제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법안이 충분한 공론화와 숙의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사법부 신뢰 받지 못해 반성…숙의 없는 입법엔 유감"
대법원은 25일 전국법원장회의를 열고 여이 추진 중인 사법개혁 3법에 대한 각급 법원 판사들의 의견을 들었다. 회의에서는 △법령을 고의적으로 잘못 적용하는 판사나 검사 등을 처벌하는 '법왜곡죄(형법 개정안)' △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법(헌법재판소법 개정안)' △기존 대법관 14명을 총 26명으로 늘리는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 등이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법원장들은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존립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했다. 다만 이들은 사법 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법안들이 사법부와 사회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본회의에 상정된 상황에 대해서는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 기관과 전문가를 아우르는 협의체를 통해 개편 방안에 대한 폭넓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치는게 필요하다"고 했다.
법왜곡죄 "구성요건 추상…고소·고발 남발 부작용"
회의에서는 법왜곡죄와 관련해 '구성요건이 추상적'이고 '고소·고발이 남발'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수정된 형법 개정안은 '형사 사건의 재판에 관여하는' 법관·검사가 1)법령의 적용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적용해 의도적으로 재판·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 2)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변조하는 경우 3)적법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법조계에서는 재판의 잘잘못을 형사처벌로 바로잡으려는 방식 자체가 효과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왜곡죄가 규정한 범죄는 기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로 처벌가능한 데다, 판사가 '의도적으로' 잘못 판단했는지를 입증해야 하는 구조여서 실제로 유죄 판결이 나오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러한 경우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판결이 형사 절차를 거친 끝에 무죄로 결론 날 수 있는데, 문제의 판결이 되레 정당한 판단으로 포장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판소원 "반복되는 재판, 법적 불안정"
전국법원장회의에서는 재판소원 도입을 두고 '단계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은 확정된 법원 재판이라도 헌법재판소 결정에 반하거나 적법 절차를 위반해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 경우, 30일 이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법원장들은 "재판 확정의 실질적 지연으로 소송 당사자들은 반복되는 재판으로 고통받고, 법적 불안정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예상된다"며 "법원, 헌법재판소, 국회, 정부 등 관계기관과 이해관계인이 참여하는 폭넓은 논의와 조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재판소원이 사실상 재판 시스템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문제인 만큼, 단계적 도입이나 제한적 적용 없이 전면 시행할 경우 '소송지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행정법원 등 특정 영역에서 단계적으로 시험 적용한 뒤 확대 여부를 논의하는 것이 현실적이란 절충안이란 주장도 있다.
대법관 증원 "사실심 부실화…국민 피해 돌아가"
대법관 증원에 대해서도 법원장들은 사실심 부실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늘리되, 공포 후 2년이 지난 뒤부터 매년 4명씩 단계적으로 증원하도록 하고 있다. 법원장들은 상고심 개편과 대법관 증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단기간 내 다수의 대법관 증원은 사실심 부실화 등 부작용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여권에서는 대법관 증원 근거로 사건 적체 해소를 내세우지만 법조계에서는 대법관 수 증가가 곧바로 전원합의체 운영 효율이나 사건 적체 해소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판연구관 등 지원 인력 확충 문제와 하급심 인력 공백, 전원합의체 구조 개편, 인사 중립성 확보 등 사법조직 전반의 설계 없이 증원부터 추진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접근이라는 평가다.
한편 국민의힘은 법왜곡죄에 반대하며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법에 따라 이날 오후 토론을 종료한 뒤 형법 개정안을 표결 처리하고, 이후 재판소원법과 대법관 증원법 등 사법개혁 3법의 나머지 법안도 순차적으로 상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