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반느'의 10년·고아성 눈물·인디언의 창…이종필 해석[왓더OTT]

[인터뷰]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 이종필 감독
"널브러진 노가리, 영화의 본질 같았죠…바둑산은 뒷산 이름"
고아성 비화에 울컥…"보는 사람의 20대 시절 맞추고 싶었죠"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는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원작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던 김미정(고아성), 박요한, 이경록(문상민)이 서로에게 빛이 돼주며 삶과 사랑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다. 넷플릭스 제공

우여곡절이 많았다. 세상에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영화 '파반느'는 2015년 기획 단계를 거쳐 극장 개봉을 목표로 출발했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전작인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탈주(2024)'와 달리 작품 로그라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투자 심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배급사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와 제작사 더램프가 손을 잡고 나서야 작품은 2024년 촬영에 들어갔고 지난해 넷플릭스의 제안으로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다.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말 오래 준비했는데 세상에 나오게 돼 감사하다"며 "넷플릭스를 통해 많은 분이 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만족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10대 시절부터 멜로 영화 연출을 꿈꿨던 그는 2009년 원작 소설을 처음 접했다. 이 감독은 "20대 끝 무렵에 책을 읽고 굉장히 몰입했다"며 "소설은 1985년 자본주의에 대한 배경도 다루지만, 제게는 어정쩡하게 모여있던 20대들의 우정과 사랑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후 영화화 과정에서 소설을 직접 워드 파일로 옮겨 적으며 1인칭 과거형 서술을 3인칭 현재형으로 바꾸는 작업을 거쳤고 인물의 이름을 붙였다.

영화 '파반느'. 넷플릭스 제공

가장 고민이 컸던 지점은 원작의 인물 외모의 설정이었다.

이 감독은 "'못생긴 여자'를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며 그림도 그려보고 인터넷에도 찾아봤지만 문득 이걸 하려고 영화를 하겠다고 했나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며 "소설을 찾아보니 구체적으로 묘사도 없더라"고 떠올렸다.

"고아성 배우가 제가 이 작업을 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김미정 역을 하고 싶다고 연락왔죠. 제가 '배우님은 너무 예뻐요'라고 하니 '인물의 눈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감독은 "받아칠 말이 없었다"며 "어쩌면 사랑 앞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 없지 않을까. 못난 얼굴이 아닌 사랑할 자신이 없는 못난 마음이 초라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널브러진 노가리, 영화의 본질 같았죠…바둑산은 뒷산 이름"

영화 '파반느'의 촬영은 2024년 5~6월 촬영을 진행했다. 겨울과 아이슬란드 장면은 같은 해 10월에 찍었고 이듬해인 2025년 2월에는 눈 내리는 장면을 추가로 담았다. 해외 촬영에는 이종필 감독과 배우 문상민, 고아성만 참여했으며 이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했다. 넷플릭스 제공

작품은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드러낸다. 전구는 어둠 속 사랑의 감정을 밝히는 장치로 활용됐다. 극 중 이동철(박해준)이 이경록(문상민)의 집에서 전구를 직접 끄는 장면, 사랑에 빠진 김미정이 전구를 켜두는 장면 등이 그 예다.

이 감독은 "김미정은 오랫동안 어둠 속에 방치돼 있던 전구 같은 인물"이라며 "필라멘트에 전기가 들어오면 점점 밝아지면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고아성 배우의 눈이 필라멘트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켄터키 호프집에서 있었던 장면도 의미를 담았다. 이 감독은 극 중 이경록이 박요한(변요한)과 김미정을 기다릴 당시 먹다 남은 노가리를 비춘 장면에 대해 설명했다.

"앞선 장면에서 김미정이 도시락을 들고 밖으로 나간 만큼 경록의 마음은 무너져 있을 것 같았어요. 그 마음을 대변한 거죠.(웃음)"

이어 "널브러진 잔해들이 이상하게 이 영화의 본질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골뱅이도 짝이 있는 것처럼 두 개를 올려뒀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파반느'의 편집 방향도 매끄럽게 흘러가기보다는 다소 투박한 결을 살리는 방향을 택했다. 이종필 감독은 "뻔하지 않았으면 했다"며 "아름다우면서도 편집 호흡이 균일하지 않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제공

호프집 뒤편 인디언 조각상에도 의미가 있다. 초반에는 지폐가 담긴 통을 들고 있지만, 후반부에는 창을 든 모습으로 바뀐다. 이는 이후 창을 들고 등장하는 인디언 이경록을 암시한다.

이 감독은 "사실 원작의 자본주의 비판을 얘기하기 위해 인디언 탄압을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클로즈업한 신이 있었지만 흐름상 제외했다"며 "창은 이경록을 연상시키기 위한 장치"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김미정 책상 벽 앞에 붙은 에드바르 뭉크의 '사춘기'는 사랑을 자각한 인물의 내면을 상징하며, 5년 뒤에는 뭉크의 '키스'로 바뀐다. 또, 이경록의 친부모 사이에 놓인 사과는 그 세계에서 아담과 이브를 상징하고, 박요한이 부른 곡 '사랑뿐이야'의 가수 바둑산 이름은 과거 이 감독이 어린 시절 살던 동네 뒷산의 이름이다.

원작에 없던 '래디시 물김치' 설정에 대해서는 "손미 작가님이 도시락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물어보니 래디시 물김치였다. 어감과 분위기가 작품과 맞아 쓰게 됐다"고 웃었다.

고아성 비화에 울컥…"보는 사람의 20대 시절 맞추고 싶었죠"

이종필 감독은 인상적인 반응에 대해 "'25년 전에 우리를 보는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나는 우리는 서로 꼭 안고 보듬어 주었다'는 내용을 보고 울컥했다"며 "그 분이 25년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배우들과의 호흡도 각별했다. 이 감독은 고아성과의 일화를 전하다가 울컥하기도 했다. 고아성은 2017년부터 이 감독과 '파반느'를 함께 논의했었고, 중간에 다른 멜로 영화 제의를 받았지만 이 작품을 위해 기다렸다고 한다.

"고아성 배우가 대본 리딩할 때 눈물을 보였어요. 몇 년을 혼자 읽었던 대본인데 문상민 배우가 경록으로 나타나 같이 읽어줘 고맙다고 했죠."

이 감독은 "촬영이 끝나고 나서 고아성 배우가 선물을 줬다"며 "첫 미팅 마치고 책방에서 산 엽서였는데 '파반느'를 너무 하고 싶어서 부적마냥 가지고 다녔다더라. 이제는 돌려드리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영화 '파반느'. 넷플릭스 제공

이어 변요한에 대해서는 "재즈 연주자였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변주를 하더라. 정말 귀한 배우"라며 "경록과 말할 때 갑자기 서늘해졌다가 웃는 장면이 있었는데 소름 돋았다"고 감탄했다.

문상민에 대해서도 "레코드 가게를 전후로 해서 눈물을 보여야 했는데 제가 감정이 올라오도록 기다려준 적이 있었다"며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그 말이 너무 감사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 감독은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새벽 세 사람이 함께 걷는 신을 꼽았다. 그는 "밤새 내일 없이 누군가와 얘기하고 헤어지긴 싫고 나도 저랬지 싶었다"면서도, "이들의 가장 행복한 순간의 끝 장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작품에 대해 "후기를 보며 누군가는 2000년대 초반, 누군가는 1990년대, 또 어떤 분은 1980년대 감성이라고 하더라"며 "보는 사람의 20대 시절에 맞추고 싶었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와 같은 공기를 넣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 감독은 청춘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청춘이요? 영원한 거죠."

한편, '파반느'는 공개 3일 만에 글로벌 톱10 영화 비영어 부문 7위에 오르며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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