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비이성의 산물일까. 아니면 구조가 만들어낸 '합리적 선택'일까.
경제학자이자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출신 던컨 웰던은 신간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에서 전쟁을 도덕이나 감정이 아닌 '유인(incentive)'과 '제도(institution)'의 문제로 해부한다. 1000년 전 바이킹의 약탈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폭력의 이면을 돈의 흐름으로 추적하는 경제사적 접근이다.
저자는 "전쟁은 최고의 장사"라는 냉혹한 전제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중세 유럽이 바이킹에게 바친 조공(데인겔드)은 단순한 손실이 아니었다. 조공을 마련하기 위한 세금 증가는 생산을 자극했고, 잉여 생산물은 경제를 활성화했다. 약탈과 침략이 오히려 성장의 계기가 된 셈이다. 웰던이 바이킹을 "역사상 가장 성공한 도적 집단"이라 부르는 이유다.
반대로, 막대한 금은을 손에 쥐고도 몰락한 국가도 있다. 신대륙에서 쏟아져 들어온 은과 금을 기반으로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스페인은 결국 빈약한 조세 기반과 재정 구조 속에서 파산에 이른다. 의회와 견제 장치를 발전시킨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펠리페 2세는 부를 제도 개혁이 아닌 권력 강화에 사용했다. 자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자원을 운용하는 체제'였다는 분석이다.
책은 칭기즈칸을 세계화의 아버지로 재해석하고, 마녀사냥의 배경을 소빙하기라는 기후 변화에서 찾는다. 르네상스의 예술 시장과 해적선의 성과 보상 체계도 경제적 유인의 산물로 읽어낸다. 해적들은 불법 집단이었지만, 선원과 간부의 보상 체계를 정교하게 설계해 반란을 최소화했다. 조직 설계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합리적이었다는 설명이다.
현대 사례도 다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싼 서방의 오판,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성과 보상 제도가 낳은 왜곡된 의사결정 등은 정보와 유인이 전략을 어떻게 비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평화로운 시기의 조직은 위협을 과장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무기와 기술을 넘어, 그 자원을 움직이는 인간의 동기와 제도에 초점을 맞춘다. "누가 이겼는가"보다 "어떤 제도가 어떤 선택을 낳았는가"를 묻는다. 복잡한 국제 정세를 돈의 흐름으로 읽어낸다.
던컨 웰던 지음 | 윤종은 옮김 | 윌북 | 360쪽
돈은 중립적인가. 아니면 이미 권력인가. '왜 우리는 돈에 지배당하는가?'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경제학자 홍기빈, 문화평론가 이라영, 헌법학자 김종철, 나라살림연구소 정창수·이상민 등 일곱 명의 필자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자원인 '돈'을 인권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본다. 결론은 단순하다. 돈의 흐름은 곧 인권의 지도다.
책은 "돈이 많으면 인권을 보장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돈이 없으면 그 자체로 인권 침해 상황에 놓이는 현실"을 직시한다. 초고령 사회와 파편화된 노동시장 속에서 '빵과 장미'를 함께 누릴 권리는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 홍기빈은 인간답게 노동할 권리를 '기본 사회'라는 개념으로 제안한다.
이라영은 돈을 '시간'에 빗댄다. 오늘날 착취는 임금이 아니라 시간의 통제에서 이뤄진다. 누군가의 여유는 다른 누군가의 과로 위에 세워진다. 시간이 권력의 장이 된 사회에서, 인권은 결국 시간을 되찾는 투쟁이 된다.
헌법은 무엇을 말하는가. 김종철은 한국 헌법이 지향하는 경제 질서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고 짚는다. 소득 분배와 국민 생활의 균등 향상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책무다. 돈은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책은 숫자로도 현실을 환기한다. 2025년 국내총생산 약 2500조 원, 국가 예산 약 700조 원. 이 막대한 자원이 어디에 쓰이느냐가 시민의 삶을 좌우한다. 정창수와 이상민은 예산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민주주의는 밥을 먹여주는가. 답은 "예산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청소년을 염두에 두고 쓰였지만,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왜 선진국이 되려 했는가. 잘 먹고 잘사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
돈은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권리의 조건이자, 제도의 방향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왜 우리는 돈에 지배당하는가?'는 돈을 비난하기보다, 돈을 통제하는 구조를 묻는다. 그리고 헌법과 예산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고.
홍기빈·이라영·천정환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