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본질이 뭐지?"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해 '베를린', '베테랑', '군함도', '모가디슈'까지 흥행작을 연이어 내놓은 류승완 감독이 신작 '휴민트'를 준비하며 다시 질문을 꺼냈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인터뷰어 지승호와 함께한 대담집 '재미의 조건'이다.
이 책은 성공한 감독의 무용담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왜 영화를 만드는가"를 다시 묻는 기록에 가깝다.
류 감독에게 영화의 시작은 이론이 아니라 '감각'이다. 어린 시절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던 기억, 불이 켜졌을 때 어딘가 달라져 있던 자신의 감정. 그는 그 순간을 다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관객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설 때 감정이 변해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영화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그는 영화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경험'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주인공의 마지막 얼굴과 눈빛은 그 영화가 남기는 마지막 문장이라고 말한다. 결국 영화는 인간 삶의 한 장면을 담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영화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OTT가 확장되고, AI 기술이 등장하고, 팬데믹 이후 관객의 관람 방식도 달라졌다. 류 감독은 요즘 시대를 "영화를 '봤다'가 아니라 '안다'고 말하는 시대"라고 표현한다. 영화가 경험이 아니라 대화 소재나 정보로 소비되는 현실을 아쉬워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는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시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재미'는 단순히 웃기거나 통쾌한 요소가 아니라,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힘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결국 마음이 움직였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 속 대사였던 "강한 사람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사람이 강한 것이다"라는 말을 다시 떠올린다. 30년 가까이 2~3년에 한 편씩 영화를 만들어온 자신의 시간 역시 그 문장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팀워크를 해치는 사람과는 일하지 않겠다고 밝힌다.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리액션, 즉 반응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그의 기준은 현장에서 쌓인 경험에서 나온다.
'베테랑'의 통쾌함, '모가디슈'의 긴장감, '군함도'의 집단 서사처럼 그의 영화는 늘 장르적 재미를 앞세워왔다. 하지만 그 안에는 사람과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그는 그 힘을 '재미'라고 부른다.
'재미의 조건'은 답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질문을 건네는 책이다. 영화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무언가를 만들고 또 소비하는가.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류승완의 질문은 영화 팬뿐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류승완·지승호 지음 | 은행나무 | 3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