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일으킨 쿠팡의 해롤드 로저스 한국법인 임시 대표가 미국 연방 하원에 출석하면서 쿠팡 문제가 향후 한미간 통상 문제로 비화할 지 우려된다.
특히 미 연방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행위를 위법하다고 판결한 뒤, 트럼프 행정부가 '슈퍼 301조' 등 다른 우회적 관세 부과 수단을 밀어붙이는 와중에 로저스의 의회 출석이 겹치면서 묘한 긴장감도 맴돈다.
미국 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차별?
로저스 대표는 23일(현지시간) 오전 9시 42분쯤부터 오후 5시까지 워싱턴DC의 레이번 하원 빌딩 내 하원 법사위원회 회의장에서 비공개 증언을 했다.
앞서 법사위는 이달 초부터 로저스 대표를 불러 증언을 듣겠다고 공언해왔다.
공화당 소속 짐 조던 법사위원장과 스콧 피츠제럴드 행정·규제개혁·반독점 소위원장은 로저스 대표에게 소환장을 보내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대우와 불필요한 장벽 생성을 피하겠다는 내용으로 최근 트럼프 행정부와 맺은 무역 합의에도 불구하고 표적 공격을 계속해왔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 정부가 쿠팡을 표적으로 삼고 미국인 임원을 기소하려는 움직임은 최근 약속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쿠팡의 모 기업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미국 기업이지만 쿠팡은 한국에서 매출 90% 이상을 올리고 있다.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과 수사 방해, 부당 노동행위에 대해 한국 수사 당국의 조사 전반을 '차별적 대우와 불필요한 장벽', '무역 합의에도 표적 공격', '쿠팡을 표적으로 삼고' 등으로 소환장에 포장한 만큼, 이날 법사위 증언은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는 지적이 진즉에 나온 바 있다.
이날 로저스 대표의 출석은 증인을 불러 진행하는 비공개 조사(deposition) 과정으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청문회(The hearing)와는 다르다.
하원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배석한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로저스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해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보는 청문회가 아니라, 의원 일부와 보좌관, 전문가들이 참석해 비공개로 로저스 대표의 증언을 청취하는 구조다.
향후 의회 차원의 입법 활동과 행정부 차원의 통상교섭 압박으로 이어지기 전 기초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절차로 작용할 수 있다.
로저스 대표는 증언을 마친 뒤 '위원회가 어떤 질의를 했느냐', '어떻게 답변했느냐', '위원회의 주된 우려 사항은 무엇이었냐' 등의 기자들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채 귀가했다.
하지만 로저스 대표는 이날 증언에서 그간 한국 경찰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쿠팡에 어떤 압박을 가했는지 등을 설명하면서 부당하고 차별적인 조치를 받았다는 취지로 주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원 법사위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이번 조사가 미국 기업들에 대한 차별적 조치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변인은 이번 조사가 공개 청문회 및 입법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모든 것이 열려 있다"(Everything is on the table)고 답했다.
슈퍼 301조 발동에 좋은 먹잇감 깔아준 로저스 증언
한국에서 로저스 대표와 쿠팡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과 유출 규모 축소, 증거 인멸, 수사 방해, 국회 청문회 위증, 산업재해 은폐 등 여러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주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가 위법하다고 판결을 내린 직후,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법 122조 및 301조 등을 관세 부과 대체 수단으로 사용하려 시도하면서 이날 로저스 대표의 증언이 한미 통상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상호관세 폐지에 따라 관세 수입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무역법 301조 관세 조사를 개시한다는 입장이다.
흔히 '슈퍼 301조'로도 불리는 무역법 301조는 미국의 무역을 제한하거나 부담을 주는 외국 정부의 부당하거나 차별적인 행동, 정책, 관행에 관세 부과 등을 통해 대응할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한다.
앞서 지난달 쿠팡의 미국 투자사들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쿠팡에 대한 부당하고 차별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에 무역법 301조 조사권 발동을 청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의회를 넘어 미 행정부 차원에서 '외국 정부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행위' 사례로 로저스 대표의 증언과 쿠팡 사태가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반해 한국 정부는 쿠팡에 대한 국내 수사는 통상 이슈와는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 의회의 이번 로저스 대표 증언 청취 역시 쿠팡의 로비로 인한 한국 정부 압박 카드로 인식하고 있다.
앞서 지난 1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한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쿠팡이 기업 이익과 자국(미국) 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대응을 하고 있다. 여러 로비도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배 부총리는 '한국 정부가 쿠팡에 차별적인 조치를 한 바가 있냐'는 질의에 "원칙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서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