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 행정 통합' 반대 41.5% > 찬성 33.7%…대전 시민 "속도 아닌 절차" 선택

시민 71.6% '주민투표 필요하다' 응답
"속도보다 충분한 논의 중요" 인식 뚜렷
여야 공방 속 정치권 부담

지난달 29일 열린 대전시의회·충남도의회 의장 공동 기자회견에서 자리에 시민들이 통합 반대와 주민투표를 주장하는 피켓(글판 시위)을 들고 있다. 고형석 기자

대전·충남 행정 통합에서 속도보다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대전 시민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왔다.

통합 자체를 두고서는 찬성보다 반대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여야 공방 속에 이번 결과는 24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정치권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23일 대전시에 따르면 대전·충남 행정 통합을 두고 시민 인식과 요구를 파악하기 위해 진행한 여론 조사에서 대전 시민 71.6%가 '주민투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주민투표 필요성에 관한 질문에서는 '적극 필요'가 49.6%, '필요'가 22.0%로 나타났다.

행정 통합 추진 과정에서 주민의 직접 참여를 통한 민주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는 시민 인식이 드러난 결과라고 시는 분석했다.

지난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의결에 따라 올해 7월 1일 목표로 추진되는 행정 통합을 두고서는 반대가 찬성보다 많았다. 반대는 41.5%, 찬성은 33.7%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유성구(46.6%)와 서구(43.6%)에서 반대 비율이 높았다. 연령대별로는 30대(53.4%)와 18세~29세(51.1%)의 반대 응답이 비교적 높게 나왔다.
 
행정 통합을 반대하는 이유로는 '지역 간 갈등 심화'가 29.4%로 가장 두드러졌고 '주민 의견 수렴 절차 부족' 26.7%, '대전 정체성 훼손' 15.7%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통합에 찬성한 응답자들은 '행정 효율화' 46.4%, '수도권 일극체제 해소' 25.3%, '주민 편의 증대' 15.7% 순으로 이유를 꼽았다.

통합 시기와 관련해서는 '5년 이상 장기 검토 후 추진'이 38.4%로 가장 두드러졌다. '2년 후 출범' 26.5%, '올해 7월 출범' 25.7%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시는 속도보다는 일정한 준비 기간을 두고 충분한 논의와 제도 보완을 거쳐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대전시의회 앞에 놓인 근조화환. 고형석 기자

이번 여론 조사 결과는 통합 공방이 격화하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정치권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주민투표 필요성이 70%를 넘어섰다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명확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충청특위는 22일 기자회견에서 "대전과 충남의 통합이 국민의힘의 추악한 정치적 셈법과 선거 전략에 가로막혀 물거품이 될 위기"라며 "반대 논리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이장우 대전시장은 "통합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계산"이라며 "국가 백년대계가 걸린 문제를 번갯불에 콩 볶듯 처리하는 게 맞느냐"고 맞서고 있다. 김태흠 충남지사 역시 "통합 특별법은 누더기 법률안"이라며 "권한 이양이 명확히 조문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합을 강행하면 지역 발전이 아닌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6일 대전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대전·충남 행정 통합 타운홀미팅에서 발언에 나선 한 시민은 "대전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대전시에서 낸 법안에 더 좋은지, 더불어민주당 법안이 좋은지 이걸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 안에 주민들의 진정한 동의가 들어가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정부의 방향은 일단 통합해 보고 나중에 개선하자는 식인 것 같은데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적정한 동의가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주민투표를 통해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언이 끝나자, 방청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생중계 댓글 창에도 공감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이 시민은 "대전 시민 가운데 통합에 대해 정말로 관심 있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라며 "정부와 대전시는 시민들이 조용히 있으니까 대부분 찬성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민주주의에서 아주 큰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대전·충남 행정 통합 타운홀미팅에서 이장우 대전시장이 발언하고 있다. 대전시 제공
시는 시의회 임시회에서 채택된 '대전·충남 행정 통합 주민투표 시행 촉구 결의안'과 타운홀미팅 등을 통해 나온 시민 의견을 반영해 지난 11일 정부에 주민투표를 하자고 건의했지만, 현재 행정안전부로부터 회신이 없는 상태다.

행정 통합이 단순한 행정 개편을 넘어 지역 정치 구도 전반을 흔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는 가운데 정치권이 속도와 절차, 실익과 명분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통합의 향배는 물론 6·3 지방선거 구도까지 요동칠 전망이다.

이번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대전시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시민 2153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전화(자동응답 ARS)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1%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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