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의 두 번째 임기 끝무렵이었다. 1년 뒤 퇴임해야 했지만 그는 그러길 원치 않았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헌법을 뜯어고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명분이 필요했다. 위기를 조작해야 했다. 국방장관에 대한 암살시도가 그 미끼였다. 마르코스는 현장에 있지도 않은 암살시도를 '공산주의자들의 테러'로 규정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마르코스는 14년간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마르코스의 절묘한 영향을 받고 그해 10월, 한국에서 박정희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의회를 해산했다. 10월 유신이다. 그의 명분은 '민주주의'로 나라 발전이 불가능하므로 '한국적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기독재의 위장 표현이었다. 위로부터의 내란, 쿠데타의 전형이다. 역사에서 군통수권을 가진 최고권력자가 실행하는 쿠데타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장기집권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실패하면 내란이 따라붙는다.
대한민국 판사계의 '엔터테이너', 지귀연 판사의 내란 우두머리 선고 재판 생중계를 지켜보는 시작부터 미덥지 않았다. 기자는 나름 재판 참관을 많이 해왔다고 생각한다. 지 판사같은 별종은 법정에서 보지 못했다. 재판 중 무뚝뚝하거나, 증인 신문에 직접 질문하거나, 아예 관여하지 않거나, 아니면 모호한 증언에 대해 친절하게 정리하거나, 판사들마다 다양한 개성과 특징이 있다. 그래도 대한민국 변호사가 가장 선호한다는 지귀연 판사의 재판은 처음이다. TV프로그램으로 비유하면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주말 저녁 '놀면 뭐하지?'류의 예능을 보는 느낌이라 표현하겠다.
법원에서 여러갈래로 진행돼 온 내란재판에서 핵심은 무엇일까. 기자는 내란죄의 인정여부나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란죄 인정과 선고 형량은 '단죄' 관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사전에 나온 내란 사건에 대한 1심 재판부들의 판단에서 이미 '내란죄 인정'은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으로 정해졌다. 만약 지 판사가 이 거대한 물결을 거슬렀다면 법원은 국민들의 처절한 분노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란 우두머리 재판에서 남은 핵심 쟁점은 '내란에 대한 성격규정' 밖에 없다.
지귀연 판사와 이진관 판사의 내란 성격 규정은 정반대다. 비상계엄 선포를 바라보는 사법적 태도에서 차이가 명확하다. 이진관 판사는 "12.3 계엄, 즉 불법적인 수단 자체가 범죄의 출발점"이라고 명시했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실체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날 밤 계엄만 아니었다면 시민 누구에게나 평온한 저녁이었다. 이 지점부터 지귀연 판사는 반대로 엇나간다. 지 판사는 "비상계엄의 선포가 실체적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에 대해서 사법심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원칙적으로 '내란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이런 시각차이가 존재하는 걸까. 지 판사는 대통령의 '계엄 선포권'이라는 고유권한 (성경 읽기)을 일단 존중해줌으로써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킨다는 외관에 씌운 것 같다. 이것도 선의의 해석이다. 반면 이진관 판사는 당시 상황이 전혀 비상사태가 아니었음을 직시하고, 요건도 안 맞는 계엄을 선포한 행위 자체가 '헌법 수호 의무를 저버린 배신적 쿠데타'라고 명명했다.
이 판결의 차이는 그 판사들의 '역사관'과 '철학'에서 출발한다고 생각된다. '세계관'이라 해도 상관없지만, 역사관이라고 끄집어낸 이유는 지 판사가 굳이 찰스1세와 개도국의 의회기능 정지사례를 샅샅이 훑어봤다고 해서 하는 얘기다. 내란이 '친위쿠데타를 통한 장기집권 목적이냐', 아니면 그냥 '국회 기능을 장기간 마비시키는 것이냐'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큰 역사인식에 대한 문제다.
지 판사 판결문에서 국회를 장기간 봉쇄하려는 목적은 암흑 깜깜이속이다.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내란범죄의 역사적 단죄는 한 발도 나가기 어렵다. 아니나다를까 조간신문에 "무기징역이 나왔으니 이제 미래로 나가자"는 사설이 떴다. 당연히 미래로 가야한다. 그러나 역사교과서에 12.3내란의 성격을 명확하게 적시·규정하지 않으면 그 미래는 또 흔들릴 수 있다.
흔히 판사는 '증거와 법리로 말한다"고 변소한다. 그들에게는 또하나의 '전가의 보도'가 있다. 자유심증주의라는 것이다. 자유심증주의란 증거에 의해 사실을 인정할 때 그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이 자유롭게 양심에 따라 판단하도록 맡기는 것이다. 이 자유심증주의라는 것이 요물과 같다. 하지만 그것으로 판단된 결정은 법적 구속을 가질만큼 강력하다. 지 판사는 자유심증주의라는 방패아래 '빈약한 역사관'을 꼭꼭 숨겼다.
도덕 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가 인간의 감성을 코끼리에, 이성을 기수에 비유했다. 이성은 자신의 감성을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위에서 올라타 있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하이트는 이성을 감성의 노예라기보다는 변호사라고 설명했다. 감성이 어떤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결정하고 나면 이성은 그런 결정의 근거가 될 적절한 논리를 찾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