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12·3 내란이 우발적? '알맹이 빠진' 무기징역 논란

'장기독재 목적 계엄' 특검 논리 부인
'계엄 요건 미비'만으로 내란죄 성립 안돼
'국회 군 투입'만 문제 삼아…사법심사 범위 축소

12·3 비상계엄은 내란 행위이고, 그 우두머리인 윤석열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1심 판결이 나왔다. 형은 중하지만 판결 내용을 두고는 12·3 내란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솜방망이 심판'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내란특검이 제시한 여러 물적 증거들이 가리키는 바와 달리 법원은 △윤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장기독재의 목적으로 치밀하게 준비하지도 않았고 △비상계엄의 실체적·절차적 요건 흠결은 내란죄 성립과 관계가 없으며 △사실상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윤 전 대통령을 부추겼다고 주범을 바꾸는 듯 서술했다.
   

12·3 이틀 전 계엄 결심, '尹 장기독재 목적' 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19일 윤 전 대통령 등에 대한 1심 선고에서 12·3 비상계엄 준비가 최소 2023년 10월 이전부터 시작됐다는 내란특검의 주장을 부인했다. 그러한 경위나 과정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대신 재판부는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를 점한 국회가 윤석열 정부의 활동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게 된 윤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1일 무렵 '더는 참을 수 없다.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해 이틀 후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 사건의 실체라고 봤다. 특히 해당 시기 민주당이 감사원장 탄핵소추까지 추진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는 것이다. 선고 과정에서 재판부가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계엄 선포가 우발적이었다고 평가한 셈이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계엄을 최소 1년 이상 준비했다는 다양한 증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 중 이른바 '노상원 수첩'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작성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고, 일부 내용은 실제 이뤄진 사실과 다르며 수첩 속 글자들의 형상이나 내용이 조악한 점, 수첩이 보관된 장소나 방법에 비춰봤을 때 '중요한 물건'인지 의심스럽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또 2024년 3월 이후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곽종근·이진우 전 사령관 등이 여러 차례 식사 자리에서 비상계엄에 대해 모의했다는 특검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령관들은 대통령이 '비상대권' '비상한 조치' 등을 언급했다는 진술을 했지만, 재판부는 "그러한 언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비상계엄을 염두하고 의도나 구상, 계획을 내비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오히려 단순한 불만이나 격정 토로, 하소연, 답답함 등을 내비친 것으로 볼 여지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 사령관들은 대통령이 정치적 고충을 토로할 정도로 오래 알던 지인 사이도 아니었고, 그런 말을 들을 보직이나 지위에 있다고 볼 수도 없었다. 식사자리에 불려 나온 사령관들은 불과 수 개월 전인 2023년 10월 인사를 통해 윤 전 대통령이 각각 방첩사·특전사·수방사 책임자로 진급시킨 인물들이었다. 계엄 선포 과정에서 중요 역할을 맡은 조직들이었다.
   
이들에 대한 인사 내용은 노상원 수첩에 이미 적혀 있었고, 특검은 수사과정에서 여 전 사령관이 2024년 10월 무렵 계엄 사전작업으로 해석되는 '북풍 유발' 관련 메모를 한 증거도 확보했도. 그러나 재판부는 이러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장기집권을 위해 정치적 반대세력을 일거에 제거하고자 장기간 마음먹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준비가 허술하다"고 판단했다.
   
또 "국회를 무력화시킨 후의 계획 등에 관한 별다른 증거나 자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특검은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계엄 선포 과정에서 해당 장관이나 지휘권자에게 지시한 문건들을 증거로 제시한 바 있다. '국회에 전입되는 예산 차단, 국가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문건과 '5개 언론사 단전단수, 민주당사 봉쇄' 문건 등이다.
   
이를 토대로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군경을 통해 무력으로 국회 기능을 정지시킨 후 국회를 대체할 비상입법기구를 통해 입법권과 사법권을 장악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 기능을 마비시켜 여론 장악까지 꾀한 것이라고 장기집권 준비 정황을 구성했지만, 재판부는 유의미한 증거와 논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1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tv를 통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가 생중계 되고 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박종민 기자
 

위법한 계엄도 곧바로 내란은 아니다? 협소해진 판단


재판부는 선고 과정에서 "핵심은 군을 국회로 보낸 것"이라며 헌법 기관인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무력 투입이 내란죄 판단의 결정적 요소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반면 헌법과 계엄법에서 정한 대로 '전시·사변 혹은 그에 준하는 상황'이라는 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이나, 국무회의 심의 및 국회 통고 등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않아도 곧바로 내란죄 성립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엄 선포가) 실체적 요건을 갖추었는지 여부에 대한 대통령의 판단은 존중돼야 하고 이를 섣불리 사법심사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은 자칫 필요한 경우 판단을 주저하게 만드는 저해요소가 될 수 있다"며 "절차적 요건은 어느 정도까지의 절차 위반을 문제 삼을 수 있는지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앞서 윤 전 대통령 측은 전시·사변의 양상이 과거와 달리 복잡·고도화되고 쉽게 목격되지 않는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 대통령의 판단을 섣불리 법원이 재단해선 안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른바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인한 국가안보 위기 속에서 계엄을 선포했다는 주장이었다. 또 실제 전쟁이 발발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라면 국무회의 등 절차적 요건을 엄격히 지키지 않았다고 계엄을 위법으로 몰 수 있겠느냐는 취지로 주장하기도 했다. 이같은 논지가 1심에서 일부 받아들여진 셈이다.
   
이를 두고 국회 등 헌법기관에 무력을 투입하지만 않는다면 어떠한 계엄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이 국회에 군·경을 직접 투입하지 않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계엄 해제 방해를 시도했다면 12·3 비상계엄이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이미 국회 다수당을 점해 군·경을 통한 장악조차 필요 없는 '강한 대통령'의 경우 정당화되기 어려운 위법·부실한 비상계엄 선포를 하더라도 법원이 심판할 수 없게 된다. (이같이 국회의 다수당이 문제적 계엄에 동조하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에서 일체의 사법심사 경로가 막힌다는 우려도 제기될 수 있다.)
 
이번 윤 전 대통령 1심 판결은 앞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이진관 부장판사)의 내란죄 성립 판단과 많은 부분에서 배치된다. 이진관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 실체적·절차적 흠결을 확인하고 '위로부터의 내란', '친위쿠데타'라고 명확히 규정했지만, 지귀연 재판부의 경우 전날 선고문에서 윤 전 대통령의 국무회의 심의 외관 형성이나 단전·단수 지시 등의 공소사실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술한 윤석열을 김용현이 조장했다? 뒤바뀐 주범


한편 재판부가 윤 전 대통령 등에 대해 적시한 양형이유의 적절성도 논란이 되고 있다. 특검의 구형보다 낮춰 선고하기 위해 덧붙인 '유리한 양형이유'라고는 해도, 12·3 내란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유리한 양형이유로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이지 않음 △물리력의 행사를 최대한 자제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임 △대부분의 계획이 실패 △범죄 전력 없음 △장기간 공무원 봉직 △65세의 비교적 고령 등을 명시했다.
   
동시에 김 전 장관에 대한 불리한 양형이유로 '피고인 윤석열의 비이성적 결심을 옆에서 조장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서술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이성적이고 허술한 구상에 불과했던 비상계엄을 김 전 장관이 적극적으로 실현시켰다는 것으로 사실상 12·3 내란사태의 주범을 바꾸는 듯한 서술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물리력 행사를 자제시켰다는 점이나 대부분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점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이유로 삼은 것 역시 앞서 이진관 재판부가 "결코 12·3 내란 가담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며 배척한 것과 비교된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선고 당시 이진관 재판부는 "(내란이 몇 시간 만에 종료된 건) 무장한 군인에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에 의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역사에 있었던 내란의 암울한 기억을 상기하면서 위법한 지시와 명령에 저항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더라도 소극적으로 참여한 일부 군인과 경찰 공무원의 행동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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