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게 실력"…국정과제된 경기도의 주 4.5일제 실험

"관성적인 근무 패턴 변화→업무 효율성 증대로"
직장내 소통 강화와 채용 브랜딩 효과 '톡톡'
주 4.5일 근무? 격주 주4일제?…핵심은 '주 35시간 노동'
"의료·돌봄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서의 안착은 숙제"


경기도가 지난해 전국 최초로 시행한 '4.5일제 시범사업'에 참여한 경기 남양주 소재 주차관제 시스템 전문기업 '아이원코리아'의 제품 제조 공장에서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 아이원코리아 제공

남양주시에 위치한 20년차 주차관제 시스템 전문기업 '아이원코리아'는 연구소부터 제조 공장, 시공 현장, AS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이른바 '복합 중소기업'의 전형이다. 이문형 대표(57)에게 주4.5일제 도입은 큰 도전이었다. 모든 공정이 맞물려 돌아가는 '종합판' 같은 구조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곧 손실 위험(risk)'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전체 직원들과 회의와 설문조사를 거친 끝에 이 대표는 주 4.5일제 도입을 결정했다.
 

"관성적인 근무 패턴 변화→업무 효율성 증대로"


이 대표는 "중소기업 특성상 단순히 하루를 메꾸는 형태의 관성적인 근무 패턴이 강했는데 이를 짜임새 있게 조정하고 남는 시간을 직원에게 돌려주는 것이 중소기업의 진정한 경쟁력이라고 판단했다"고 주 4.5일제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우려와 달리 이 대표의 결단은 반전의 결과를 낳았다. 지난해 주 4.5일제 도입 이후 전년 동기 매출이 20%가량 올랐다. 단순히 주 4.5일제의 성과라고 단정하기에는 국내외 정치·경제적 상황 등 고려 요소는 많지만 적어도 이 제도를 도입한 게 회사 운영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줬다.
 
이 대표와 직원들은 주 4.5일제 도입 이후 짧은 시간에 업무를 응축하는 집중력이 생겼고, 업무 효율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입을 모았다. 입사 3년차 직원 배준구(27) 매니저는 "처음엔 업무 공백이 걱정됐지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핵심 업무를 압축해서 처리하니 오히려 집중력이 눈에 띄게 올라갔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목요일만 지나면 주말이라는 생각에 월요병마저 가벼워졌다"며 "금요일 낮 12시에 퇴근해 남들보다 빨리 강원도로 여행을 떠날 때 느끼는 여가의 질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고 덧붙였다.
 

직장내 소통 강화와 채용 브랜딩 효과 '톡톡'


주 4.5일제는 단순히 쉬는 날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동반했다. 아이원코리아는 이번 주 4.5일제 도입을 계기로 전산 시스템과 공유 툴을 대폭 확대하는 등 소통과 공유 방식을 전산화했다.
 
이 대표는 "원시적인 근무 패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중소기업엔 엄청난 발전의 계기가 된다"며 "중소기업이 대기업만큼 급여를 줄 순 없지만 '휴식'이라는 복지를 통해 직원들의 프라이드를 높였다"고 말했다.
 
수원의 사회적기업 '희망둥지협동조합'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도시재생 기획과 로컬 브랜딩, 집수리 교육 사업 등을 주업으로 하는 이곳은 문상철(45) 대표를 필두로 20~50대 전문가들이 모여 창의성을 발휘한다. 문 대표는 "직원의 창의적 에너지가 곧 기업의 자산"이라며 주 35시간 근무를 통해 확보한 여유가 업무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기업에서 주 4.5일제는 경영자와 노동자가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기업의 브랜딩 가치를 높이는 핵심 지표가 되고 있다. 두 기업 모두 직원 채용시 경쟁률이 한자릿수에서 두자릿수로 폭증했다. 직원들도 주변에서 "그런 회사에 가고 싶다"며 부러움의 표현을 자주 듣는 등 강력한 채용 브랜딩이 됐다.
 
과거 노동시장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 혹은 수도권기업으로 옮겨가기 위한 '경력 정거장' 역할을 했다면 주 4.5일제 도입 이후 직원들을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희망둥지협동조합에서 입사 7년차에 접어든 정지웅(35) 과장은 "주 4.5일제는 직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의 조화를 이끌어내면서 애사심 향상 또는 떠나기 싫은 직장으로 인식하게 하는 기점을 마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가 지난해 전국 최초로 시행한 '4.5일제 시범사업'에 참여한 경기도 수원시 소재 도시재생 기획과 로컬 브랜딩, 집수리 교육 사업 등을 주업으로 하는 사회적기업 희망둥지협동조합의 사무실 모습. 주영민 기자
 

주 4.5일 근무? 격주 주4일제?…핵심은 '주 35시간 노동'


주 4.5일제의 핵심은 노동 시간의 총량을 '주 35시간'으로 줄이는 데 있다.
 
아이원코리아는 매주 금요일 오전 근무제를 시행하다 지난달부터 격주 주 4일제로 근무 형태를 변경했다. 거래처는 여전히 주 5일제를 유지하면서 금요일 오후에 발생하는 민원 등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주 35시간의 노동 시간은 유지하되 회사 사정에 적합한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인 셈이다.
 
희망둥지협동조합은 월요일 오전을 쉬고 오후에는 재택근무하는 방식으로 주 4.5일제를 운영한다. 일터에는 화~금요일에 나가고, 토~월요일은 재택이 가능해 '월요병의 부담'을 줄였다.
 
'경기도형 주 4.5일제' 시범사업 참여 기업들은 '주 35시간'이라는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외부 협업 구조에 맞춰 요일 자율 선택이나 격주 근무 등 다양한 형태의 '시운전'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도의 마중물과 이재명 정부의 '워라밸+4.5'


이러한 실험을 뒷받침하기 위해 경기도는 지난해 8월부터 전국 지자체 최초로 시범사업에 착수했다. 근로시간 단축분에 대한 임금 보전과 함께 신규 채용 장려금, 맞춤형 컨설팅 등을 패키지로 지원한다. 현재 참여 중인 105개사 가운데 제조업(44.8%)이 가장 많지만 정보통신업(21.0%), 도·소매업(20.0%) 등 산업계 전반이 고르게 참여하며 제도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주 4.5일제 도입을 123대 국정과제 중 핵심으로 확정하고, 2030년까지 우리나라의 실노동시간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단축하겠다는 로드맵을 수립했다. 이를 위해 올해에만 약 93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워라밸+4.5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을 주 35시간 수준으로 단축하는 기업에 대해 근로자 1인당 최대 연 72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고 중소기업의 추가 채용 시 인건비 지원 비중을 대폭 높이는 방안도 포함됐다.
 

"의료·돌봄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서의 안착은 숙제"


결국 제도 안착의 관건은 경영자의 결단이다. 아무리 직원들이 원하더라도 기존의 관성적인 시스템을 깨고 새로운 모델을 도입하는 최종 책임은 경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특히 거래처 대응이 필수적인 업종일수록 경영자를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데이터와 행정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범사업이 향후 본격적인 제도 정착을 앞두고 우리 사회의 갈등과 사각지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평가한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김종진 소장은 세대 간 가치관 차이를 인정하는 노력과 함께 돌봄이나 병원 등 노동시간 단축이 자칫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의료, 사회서비스업 등의 분야에는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주 4.5일제는 단순한 노동 정책을 넘어 서로 다른 세대가 일과 삶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과정"이라며 "돌봄 등 필수 서비스 현장에서 이 제도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안착시킬지가 주 4.5일제로 가는 과정에서 남겨진 중요한 숙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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