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재판을 헌법소원 심판 대상으로 삼는 '재판소원' 도입 법안이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사법부 안팎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재판에 대한 헌법적 통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기대에는 일정 부분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충분한 공론화와 제도 설계 없이 추진될 경우 사법체계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의 핵심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재판된 경우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경우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 확정된 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대법원은 "사실상 4심제를 허용하는 위헌적 입법"이라고 반발하는 반면, 헌재는 "헌법에 근거한 기본권 구제 절차"라며 맞서고 있다.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헌법 제101조를 근거로 "헌법은 재판에 대한 불복을 대법원에서 끝내도록 구조를 설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헌법이 '제5장 법원'과 '제6장 헌법재판소'를 병렬적으로 규정한 만큼, 대법원과 헌재는 수평적·독립적 관계에 있으며 어느 기관도 다른 기관의 상급기관이 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특히 재판소원 허용 요건 가운데 '법원의 재판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라는 조항을 문제 삼았다. 이 기준이 적용될 경우 재판소원 사유가 사실상 제한 없이 확대될 수 있고, 확정판결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까지 허용되면 패소 당사자가 소송을 지연해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현직 법관들 사이에서도 가장 큰 우려로 꼽히는 대목은 '확정판결 이후의 혼란'이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결이라 하더라도 헌법에 위반될 가능성을 전면 부정할 수는 없다. 헌재의 문제 제기에도 법리적 타당성이 있다"면서도 "지금 구조대로라면 과거 판결까지 다시 다퉈 달라는 요구가 쏟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많이 인용돼도 1%도 안 될 제도를 위해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혼란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기존 심급제에서 벗어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의 또 다른 부장판사는 "심급제는 헌법의 원칙인데 재판소원까지 허용하면 사실상 4심제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상고 허가제나 실질적 2심제 논의조차 번번이 무산된 상황에서 재판소원은 사법 부담을 더 키울 수 있다"고 했다.
한편 헌재는 지난 13일 참고자료를 내고 대법원의 위헌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한 바 있다. 헌재는 "헌법 제111조 1항은 헌법재판권을 헌재에 귀속시켜 재판소원의 헌법적 근거를 분명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소원은 대법원 판결을 다시 심리하는 상급심이 아니라, 확정판결로 인해 발생한 기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헌법심이라는 것이다.
사법 절차 지연 우려에 대해서도 헌재는 대만 사례를 들어 반박했다. 재판소원을 도입한 2022년 헌법소원 접수 건수는 급증했지만, 이후에는 감소 추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헌재는 "재판소원 도입 초기에는 접수되는 심판사건 수가 대폭 증가할 수 있으나 적법요건 등에 대한 헌재의 판례가 집적되고 재판소원의 목적과 기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제도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그 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다만 법원 내부에서는 해외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는 데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한윤옥(사법연수원 35기)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에 글을 올려 "사법권을 행사하는 기관은 연방최고기관인 연방헌법재판소와, 기본법에 의해 비로소 권한을 부여받은 관계기관인 연방법원으로 구성된다"며 "한국 헌법상 헌법재판소는 국가 사법권의 행사 주체가 아니고 다만 헌법 111조 1항에 열거된 각 관장 사항을 심판하는 헌법기관"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식 재판소원 논리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헌법 체계의 본질적 차이를 간과한 것이란 지적이다.
사법연수원 교수인 모성준(사법연수원 32기) 부장판사 역시 조선시대의 '거듭된 송사'를 언급하며 "지방 수령이 교체될 때마다 이전 재판에서 패소한 이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건을 다시 들고 나오는 '재판의 무한 불복'은 고질적인 사회 문제였다"며 "현재의 재판소원 논의는 겉으로는 국민의 기본권 구제를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재판에 승복하지 못하는 당사자들에게 언제든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둠으로써, 조선시대의 '거듭된 송사'와 '불복'의 역사를 현대적 버전으로 재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판소원 제도의 추진 방식과 속도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분노나 정치적 불만이 개혁의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제도를 설계할 수는 없다"며 "재판소원은 지금처럼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라 충분한 숙의를 거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재판소원이 실제로 작동한다면 헌법적 기준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겠다는 명분 아래, 결국 대법원 확정판결을 일부 사건에서라도 헌재가 뒤집을 수 있는 구조가 된다"며 "그 권한이 생기는 순간 헌재가 사실상 최고법원으로 자리 잡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든 가능은 하겠지만, 특정 판결이나 사법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법원을 2등 기관으로 격하시키거나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게 맞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