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명분 스스로 퇴색시킨 장동혁의 악수(惡手)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12일 이재명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의 청와대 오찬회동에 불참한다고 밝힌 후 원내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

"모래알로 지은 밥을 씹어 먹으러 제가 청와대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청와대 오찬을 돌연 취소하며 이렇게 말했다. 약속시간인 12일 정오를 불과 30분 남겨둔 시점이었다.
 
사실 장 대표는 이날 오전 9시 최고위원회의 때만 해도 "단독 영수회담이 아닌 것은 아쉽지만 대통령께 제가 만난 민심을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2시간여 만에 이 발언을 뒤집은 것이다. 정책적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겠다던 약속도 물론 무산됐다. 초유의 '오찬 노쇼'였다.
 
정치권에서는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지난달 장 대표가 8일간 단식하며 내건 주요 요구사항이 '영수회담'이었던 탓이다. 실제로 지도부는 '제1야당 대표가 곡기를 끊고 있는데, 어떻게 청와대가 코빼기도 안 보이냐'는 불만을 공공연히 드러냈었다.
 
장 대표가 들고 나온 번복 사유는 '법사위의 난(亂)'이다. 오찬 전날 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민주당이 주도하는 재판소원법 등이 일방 처리된 상황을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민주당의 합당 논란으로 재점화된 명청(明淸) 갈등을 '부부싸움'에 빗대 "오찬은 이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 두 분이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도 '궁색한 변명'으로 보는 기류가 상당 감지된다. 민주당의 입법독주는 예측된 수순이었고, 장 대표도 상황을 알고 참석 의사를 재확인한 것이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특히 설연휴 직전 여론전을 펼칠 최적의 전장(戰場)을 내버린 꼴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당대표 단식에도 시큰둥했던 여론을 감안하면, 모처럼 '명절 밥상'을 선점할 기회를 놓쳤다는 탄식이다.
 
민심을 전하고 오겠다는 당대표 발언 직후 '들러리 서지 말자'던 최고위원들이나, 이를 못 이긴 장 대표 모두 정무적 판단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설상가상 극우 유튜버 전한길씨가 오찬 불참을 종용한 것도 악재가 됐다. 당 안팎에선 전씨의 '지령'을 따른 결과가 아니냐는 의심이 잇따랐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송언석 원내대표가 설 연휴를 앞둔 13일 서울 중구 중림동 쪽방촌 주민들에게 설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국민의힘에 더 뼈아픈 대목은 장 대표가 자신의 단식 명분을 스스로 퇴색시켰다는 비판이다. "여기서 묻히겠다"던 단식투쟁이 외부를 향한 것이 아니라, 한동훈 전 대표 제명과 맞물린 '내부용'이었다는 지적을 자인한 꼴이라는 취지다. 쌍특검이 여전히 절실한 대국민 의제라 여겼다면, 무턱대고 보이콧보다는 다른 액션 플랜을 강구했을 거란 쓴소리도 나왔다.
 
영남권의 중진 의원은 "국민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를 생각하기보다는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지도부에 포위된 모습"이라며 "실망스럽다"고 했다. 당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공당의 무게감을 떨어뜨린 것은 대표 본인"이라고 직격했다.

오찬 불발 뒤 장 대표의 눈길은 어디를 향했을까. 당 중앙윤리위는 13일 친한동훈계 배현진 의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1년' 징계를 의결했다. 배 의원은 "장동혁 지도부의 옳지 못한 사심, 그 악취를 명절 밥상의 향긋한 냄새로 가릴 수 있겠나"라며 반발했다. 박정하 의원은 "어젠 청와대 밥상 걷어차더니 오늘은 결국 설날 밥상마저 엎어버렸다"며 "이쯤 되면 지방선거 밥상은 아예 차리지도 못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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