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70년 만의 대승을 거뒀다. 승리의 1등 공신은 누구일까?
무엇보다 본인 및 자민당의 과감한 결단과 치밀한 전략일 것이다. 국제적 환경도 적지 않은 배경이 됐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선거일 직전에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를 극찬했다.
그는 SNS '트루스'에 "다카이치와 그녀가 이끄는 연합에 전면적 지지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다카이치는 "강하고, 힘있고, 현명한 지도자"라면서, "3월 19일 백악관에서 맞이할 것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자민당과 경쟁을 하던 일본 야당으로서는 경악할 발언이다. 도를 넘는 내정간섭이기도 하다.
미국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는 다카이치의 승리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많은 일본인들이 안보 불안을 느끼는 시기에 선거가 치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발언이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아니다. 다카이치의 압도적 승리는 그 전부터 예견됐었다.
방향은 달랐지만, 다카이치가 역사적 승리를 거둔 데는 미국보다 중국의 영향이 더 컸다.
지난 해 11월 다카이치 총리가 이른바 '대만 유사시 무력 개입 시사' 발언을 하자 중국은 강력한 보복 조치에 나섰다.
중국의 일개 외교관은 '다카이치 총리의 목을 치겠다'는 섬뜩한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다카이치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중국이 대응의 강도를 높일수록 일본 국민의 지지는 오히려 상승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간신히 당선된 다카이치는 중국의 보복을 반전의 기회로 활용했다. 취임 3개월 만에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다카이치는 중국의 강압에 정면으로 맞서며 '강한 일본'을' 외쳤다. 생활고에 찌든 국민들에게는 '풍요로운 일본'을 약속했다.
일본 유권자들은 첫 여성 총리 다카이치에 환호했고 그녀에게 대승을 안겼다.
중국의 보복은 일본의 민심을 폭발시킨 '화약'이나 다름없었다.
중국의 강경 대응이 역풍을 불러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0년 1월 대만 총통 선거도 중국 때문에 판도가 뒤집어졌다.
선거전 초반에는 친중 성향의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후보가 훨씬 앞서나갔다.
하지만 승부는 독립 성향인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중국이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탄압한 것이 선거를 앞둔 대만에서 반중 정서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홍콩 자치 정부는 민주 세력 지도자들을 모조리 검거해 감옥에 넣었다. 홍콩은 중앙 정부인 중국의 통치를 받고 있다.
중국은 홍콩의 인접 도시 선전에 무장경찰까지 주둔시켰다. 여차하면 투입할 수 있다는 위협이었다.
결국 홍콩의 민주화 시위는 완전히 진압됐고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은 사라졌다.
중국은 향후 민주화 세력의 집권 가능성까지 원천 차단했다. 공직 출마 자격을 사전 심사해 걸러내는 방법이 동원됐다.
홍콩 민주화 운동의 탄압은 대만에서 민진당의 돌풍을 촉발시켰다. 대만도 홍콩처럼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한 것이다.
반중 성향인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의 지지율이 치솟으며 총통에 재선되는 역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국내 정책에서의 부진으로 인기를 잃었던 민진당을 시진핑 주석이 기사회생 시켜준 셈이다.
민진당은 4년 뒤인 2024년 총통선거에서도 승리했다. 그 결과 친중 성향의 국민당은 12년 동안 정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번 일본 중의원 선거는 2020년 대만 총통 선거의 데자뷔다. 중국의 전면적 대일 보복이 일본 국민을 자극해 역풍을 몰고왔다.
무기력에 빠진 자민당을 소생시키고 보수파인 다카이치가 역사적 승리를 하는 데 중국 공산당이 기폭제 역할을 한 꼴이다.
재집권에 성공한 직후 다카이치는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추구"한다 면서도 단호한 대응 입장을 재확인했다.
중일관계에 "우려와 과제가 존재하므로 대화를 계속"하겠지만, "국익 관점에서 냉정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겠다"고도 말했다.
다카이치는 "미·일 동맹을 중심축으로 해서, 한·미·일, 미·일·필리핀, 미·일·호주, 일·호주·인도 등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일일이 밝혔다.
사실상 중국 견제를 위해 모든 동맹국 및 우방국들과 힘을 합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강경 기조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린젠(林剑) 외교부 대변인은 다카이치의 대화 노력에 발언에 "대만 유사 발언부터 철회"하라고 맞받았다.
아울러 "군국주의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경고했다.
국내에서의 대성공과는 달리, 현재 국제정세에서 다카이치의 선택 폭은 넓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미국과의 동맹은 의심받고 있다. 중국의 경제력과 국방력은 일본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러시아와는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비우호적 관계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준동맹국들은 일본의 안보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더구나 유럽 주요 국가 정상들은 최근 중국을 잇따라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전면적 협력을 약속하고 있다.
일본이 믿어왔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직거래'를 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오는 4월 중국 방문 및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와 시진핑의 '비밀스러운 흥정'은 한층 활발해질 것이다.
미국이 중국 견제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고 일본이 총대를 메는 일이 점점 늘어날 수도 있다.
다음달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만나게 될 다카이치는 미국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할 처지다.
다행히도 다카이치 총리는 당장 신사 참배를 강행하지 않을 뜻임을 내비쳤다
이른바 '환경정비'를 구실로 내세웠다. 참배를 포기한 것은 아니고, 여건이 조성될 때까지 유보하겠다는 의미다.
신사 참배는 다카이치의 국내 정치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미국이 원하는 한·미·일 3국의 긴밀한 안보 및 경제 협력에는 걸림돌이 된다.
이런 상황을 중국이 모를 리 없다. 신사 참배는 외교적 공세의 소재가 될 뿐 아니라 반일 감정으로 중국인들을 응집시키는 촉매다.
일본을 '군국주의 부활'로 몰아세우면, 대만 통일에 대한 국내 지지도 올라가고 군부의 불만을 잠재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다카이치가 신사 참배를 강행한다면, 역설적으로 '일본보다 중국을 더 강하게' 만들 지도 모른다.
거꾸로 다카이치가 일본의 과거 침략에 대해 명백히 사죄를 한다면, 중국이 단골로 사용하는 무기 하나를 잃게 만드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통치 정당화 논리인 '백년국치'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도 설득력이 약해질 수 있다.
더 확실한 것은 한일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이 제거되고, 한·미·일 안보협력이 탄력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다카이치 총리가 내건 '강한 일본'으로 가는 첩경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침략의 역사를 진정으로 사죄하고 전범국가의 족쇄를 스스로 푸는 것은 중국에도 위협이 된다.
대다수 일본 국민의 열광 속에 전후 최대의 권력을 쥐게 된 다카이치 총리와 자민당에게 지금이 일본의 운명을 바꿀 기회다.
강성웅 국제정치 칼럼니스트
- 전 YTN베이징 특파원, 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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