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돌아오고 나무는 어김없이 싹을 틔우는데, 인간은 여전히 흔들린다. 기후 위기와 분열, 피로와 고립 속에서 계절은 반복되지만 회복은 반복되지 않는다.
이번 봄 [책볼래]는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의 네 권을 나란히 세웠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비밀의 화원',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를 온기로 들춰낸 리처드 파워스의 '오버스토리',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이다.
이 책들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묘하게도 한 질문을 공유한다. '봄은 저절로 오는가,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가는가'
'비밀의 화원'에서 봄은 문 하나를 여는 일에서 시작된다. 십 년간 잠겨 있던 정원의 문, 그리고 부모를 잃고 마음을 닫아버린 메리. 황폐해 보이던 정원은 사실 죽어 있지 않았다. 돌보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메리가 흙을 만지고 잡초를 뽑는 동안, 정원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고 아이들의 얼굴에도 빛이 돈다. 돌봄은 공간을 바꾸고, 공간은 사람을 바꾼다.
이 장면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레 '오버스토리'가 떠오른다. 파워스가 말하듯, 나무 역시 인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인간이 숲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숲이 인간에게 다시 관계를 제안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메리가 정원을 가꾸는 손길은 작은 규모의 생태적 실천이다. 그 손길이 없었다면 정원은 그대로 방치됐을 것이다. '오버스토리'의 인물들 역시 같은 자리에 선다. 그들은 나무 위에 올라 벌목을 막고, 숲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걸어버린다.
한쪽은 담장 안의 작은 정원이고, 다른 한쪽은 수백 년을 살아온 거대한 숲이지만, 두 장면은 닮아 있다. 누군가 손을 내밀지 않으면 생명은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봄은 기다림이 아니라 개입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조용히 맞닿는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그 연결을 인간 사이로 옮겨놓는다. 달빛 아래 메밀꽃밭을 걷는 허생원과 동이의 밤길은 단순한 동행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겹치고, 오래된 기억이 뒤늦게 제자리를 찾는 시간이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문장은 풍경 묘사로 유명하지만, 그 풍경은 인연을 드러내기 위한 배경이 아니라 관계를 감싸는 공간이다. 여기서 자연은 장식이 아니라 매개다. 흙과 들판이 사람을 다시 이어준다.
그 장면을 읽고 나면 '비밀의 화원'의 정원도 달라 보인다. 정원은 아이들의 내면을 고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공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지구 끝의 온실' 속 돔 안의 식물 연구소가 떠오른다. 김초엽이 그리는 온실 역시 단순한 과학 시설이 아니라, 인간이 다시 관계를 배우는 장소다. 식물을 키운다는 일은 결국 타자를 돌본다는 연습과 닮아 있다.
'오버스토리'가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흔들며 "우리는 숲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지구 끝의 온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일부라는 사실을 자각한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더스트로 뒤덮인 세계에서 사람들은 씨앗을 보존하고, 식물을 퍼뜨리며, 새로운 숲을 꿈꾼다. 그 장면은 메리가 처음으로 흙을 파던 순간과 겹쳐 보인다. 규모는 다르지만 태도는 같다. 돌보겠다는 선택, 이어가겠다는 의지.
이 네 권을 따로 읽으면 각자의 이야기로 남지만, 함께 읽으면 하나의 흐름이 생긴다. 정원은 들판으로 넓어지고, 들판은 숲으로 이어지며, 숲은 미래의 온실로 확장된다. 개인의 회복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그리고 다음 세대를 향한 책임으로 이어진다. 봄은 그렇게 점점 커진다.
이 작품들이 베스트셀러로 오래 사랑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돌보지 않으면 사라지고, 연결하지 않으면 끊어진다는 사실을. 그러나 일상은 그 사실을 자주 잊게 만든다. 이 소설들은 잊고 있던 감각을 다시 깨운다. 흙의 촉감, 달빛의 온기, 나무의 느린 시간, 씨앗의 가능성.
2026년의 봄은 빠르게 소비되지만, 문학은 속도를 늦춘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마음 어딘가가 조금씩 움직인다. 책은 계절을 바꾸지 않지만, 계절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꾼다. '비밀의 화원'을 덮을 즈음엔 내 안의 잠긴 문을 떠올리게 되고, '메밀꽃'을 읽다 보면 오래된 관계를 생각하게 되며, '오버스토리'를 지나면 내가 딛고 선 땅을 새롭게 보게 되고, '지구 끝의 온실'을 마칠 때쯤이면 다음 세대를 떠올리게 된다.
결국 네 권이 건네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봄은 오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가깝다. 메리가 정원의 문을 열었을 때처럼, 허생원이 달빛 아래서 지난 시간을 마주했을 때처럼, 숲을 지키려 나무 위에 오른 사람들처럼, 더스트 속에서도 씨앗을 놓지 않았던 이들처럼, 봄은 늘 누군가의 선택 이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비밀의 화원'의 정원은 닫힌 마음이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메밀꽃 필 무렵'의 들판은 사람 사이의 인연이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오버스토리'의 숲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조용히 상기시키고, '지구 끝의 온실'의 씨앗은 그 자각 이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남긴다. 이 네 개의 장면이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계절을 완성한다.
그래서 봄은 풍경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꽃이 피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돌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일이다. 관계를 다시 이어 붙이고, 방치된 시간을 들여다보고, 내가 딛고 선 땅을 새삼스럽게 바라보는 순간, 계절은 비로소 우리의 시간이 된다.
이번 봄, 무엇이 피었는지를 말하기보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심을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일. 정원을 열고, 들판을 걷고, 숲을 지키고, 온실을 짓는 네 편의 소설이 말하는 봄이 아닐까.
그리고 책장을 덮는 순간, 그 다음 장면은 독자의 삶에서 이어질 차례다.
■ 비밀의 화원 /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 메밀꽃 필 무렵 / 이효석 지음
■ 오버스토리 / 리처드 파워스 지음
■ 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