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6개월이 걸린 하이브와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전 대표(현 오케이레코즈 대표)의 주주간계약 및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소송에서, 법원은 두 사건 모두 민 전 대표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이브의 '주주간계약 해지 확인' 청구를 기각했고, 민 전 대표가 행사한 풋옵션 대금 255억 원을 하이브가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12일 오전 하이브가 민 전 대표와 신모씨 등 2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간계약 해지 확인 소송과, 민 전 대표·신모·김모씨 등 3명이 하이브를 상대로 낸 풋옵션 행사 관련 주식매매대금 청구 소송의 1심 선고가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남인수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5분 판결 선고를 시작해, 12시 2분까지 약 2시간 동안 판결의 요지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민 전 대표가 어도어의 대표이사로서 하이브와 맺은 주주간계약에서, 계약 해지 사유가 될 수 있는 '주주간계약 의무를 분명하고 중대하게 위반'한 사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주주간계약은 '유지'되었고, 2024년 11월 민 전 대표가 주주간계약을 바탕으로 풋옵션을 행사한 것은 정당하다고 봤다.
민 전 대표 등이 하이브를 압박해 하이브가 보유한 발행 주식을 헐값에 매도하게 함으로써, 하이브의 어도어 지배력을 약화하고 민 전 대표가 어도어를 독립적으로 지배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이를 실행하거나, 전속계약이 남아있는 뉴진스(NewJeans)를 데리고 나가려고('빼가기') 해, 상호 협력 관계의 근간이 되는 '긴밀한 신뢰 관계를 중대하게 위반했다'라는 하이브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주간계약 해지 성립될 정도의 '중대 의무 위반'이란
주주간계약에 따르면, 민 전 대표는 2024년 11월 11일부터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하이브는 뉴진스 성공과 귀속(회사에 소속됨)에 따른 보상으로 민 전 대표에게 어도어 지분 20%를 양도했고, 풋옵션 행사 시 멀티플 13배를 보장했다. 민 전 대표는 어도어 설립 후 5년간 재직 의무와 경업 금지 의무를 부담했다.
우선, 재판부는 '민 전 대표와의 주주간계약이 해지되었다'라는 것을 확인받고자 한 하이브의 청구 자체는 "확인의 이익이 있다"라고 말했다. 핵심은 '주주간계약 해지 사유'가 될 만한 '중대한 위반'이 무엇인지였다. '주주간계약' 소송에서 원고는 하이브, 피고는 민희진 등 2인이다.
재판부가 밝힌 하이브-민희진 주주간계약에 따르면, '이 사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가 '약정 해지 사유'로, '주주간계약의 기초가 된 상호 간의 신뢰 파괴에 이른 경우'가 '법정 해지 사유'로 나타나 있다.
'이사는 언제든지 주주총회의 특별 결의로 해임할 수 있다'라고 명시한 상법 385조 1항을 언급한 재판부는 원고 하이브가 어도어 지분 80%를 보유했기에 피고 민희진을 언제든지 해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 '무분별한 해임'을 제한하고자, 주주간계약에 '정관 법령 위반 행위' '본 계약을 중대하게 위반한 행위'를 해임 및 사임 사유로 규정했다고 부연했다.
△고의·중과실로 어도어에 10억 원 이상의 손해를 입히거나 △어도어 운영과 관련해 배임이나 횡령, 기타 위법행위를 하거나 △대표이사로서 업무 수행에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에 해임 및 사임 사유가 인정된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양측의 주주간계약을 두고 "당사자의 신뢰뿐만 아니라 금전적 이해관계가 강하게 결부되어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강하게 되는 구조"라며 "이러한 계약의 특징을 고려하여 앞에서 본 해임 사유와 사임 사유를 중대한 사유로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카카오톡 대화 내용, 증거로 채택돼
하이브와 민 전 대표 측은 서로 얽히고설킨 소송 대부분에서 주요 증거로 제시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의 증거 능력을 두고 날을 세웠다. 하이브는 민 전 대표와 어도어 부대표 등이 업무 관련해 나눈 이야기(내용)이고, 자발적 반납에 의한 확보(방식)라는 점에서 둘 다 정당성이 있기에 증거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 전 대표 측은 민사소송법이 자유심증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통신비밀법상 불법 검열에 의한 우편물 내용이나 불법 감청에 의한 전기통신 내용의 증거 사용 금지를 규정하므로, 하이브의 '불법 감사' 과정 중 취득한 것이기에 증거로 쓰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카카오톡은 원고(하이브)의 자회사(어도어)에 대한 업무 감사 건에 근거한 감사 절차에서 담당자의 자발적 반납으로 획득하고, 대화 일방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키워드를 검색하는 방식"을 썼으며, "대부분 업무 관련 정보라고 할 것이므로 카카오톡의 증거 능력은 인정된다"라고 판단했다.
구체적 논의는 있었지만…민희진 '승소' 영향 못 미친 '카톡'
카카오톡 대화에 나타난 '내용'은, 하이브 주장을 배척하고 민 전 대표 측 주장을 전적으로 인정했다. 먼저 재판부는 "피고 민희진이 어도어에 대한 원고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자신이 어도어를 독립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어도어 독립 방안')을 모색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당시 어도어 매수가액을 0.8조(8천억 원)~1.5조(1조 5천억 원)로 추정해 하이브와 협상에서 어도어 지분을 저렴한 가격에 매수하는 방안을 모색한 점, '주주간계약 협상 결렬 시 2025년에 풋옵션을 행사하고 어도어를 나가 어도어를 빈 껍데기로 만든다'라는 그림을 그린 점 등도 모두 인정했다.
참고로 민 전 대표는 풋옵션 행사 시 어도어의 직전 2개년도 평균 영업이익에 13배를 곱한 값('멀티플 13배')에서 자신이 보유한 어도어 지분율의 75% 액수를 하이브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주주간계약 수정 협상 과정에서 멀티플 배수를 13배에서 30배로 늘리고자 했기에, 협상이 성사되면 하이브가 민 전 대표에게 지급해야 할 대금도 커질 예정이었다.
동시에 재판부는 "어도어 독립 방안을 모색한 사정만으로 이 사건 주주간계약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카카오톡에 나타난 '엑싯'(EXIT)이란 표현은 하이브 주장처럼 '경영권 탈취' 의미가 아니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오히려 민 전 대표 측은 주주간계약에 나온 재직기간 5년 만기를 정상적으로 채운 뒤를 기준으로 풋옵션 행사를 가정하고 있고, 어도어의 주식 상장(IPO, 기업 공개) 가정 등도 '하이브 승인'을 전제로 했다는 점을 재판부는 짚었다.
△'어도어가 먼저 3천억짜리 회사를 살 거니까 하이브야 우리 외부 투자받게 승낙해 줘' △'하이브 지분을 66% 이하로 낮추면 방어가 가능해져요' △'플랜 A는 빠르게 높은 가격으로 엑싯(탈출)해서 우리만의 세계 구축, 플랜 B는 하이브에 IPO를 허락받고 3천억쯤 외부에서 당겨와서 이런저런 회사를 사 와서 똘똘 뭉쳐 하이브가 (어도어를) 못 건드리게 하는 거죠' △'IPO 하면 지분가치가 2.5조쯤이니 절반만 팔아도 돈이 된다' 등 부대표의 답변을 봤을 때, 어도어 독립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부연했다.
민 전 대표가 외부 투자자와의 만남 후 '진전 생기면 데리고 나와라가 중론인데 계약 내용 좀 자세히 보자'라고 부대표에게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재판부는 "이 '데리고 나와라'가 문맥상 '뉴진스 데리고 나와라' 하는 의미로 보인다"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뉴진스의 어도어 전속계약 잔여기간, 전속계약 해지에 따른 뉴진스 멤버들의 위약금 규모(4500~6200억)가 등장한다.
'2025년 1월 2일에 풋옵션 75% 행사 엑싯 약 천억원 캐시 아웃, 어도어는 빈껍데기 됨, 재무적 투자자 구해서 어도어 사오는 플랜, 하이브에 어도어 팔라고 권유, 적당한 가격에 매각, 민 대표님은 어도어 대표이사 캐시 아웃한 돈으로 어도어 지분 취득, 주주간계약 새로 체결, 이렇게 되면 옛날에 못 팔고 남겨놓은 5%가 쓸모가 있어지네요'라는 부대표의 계획에, 민 전 대표가 '대박'이라고 반응한 대화 내용도 이날 선고에서 언급됐다.
부대표는 '아무리 생각해도 멤버들 탈퇴하는 것은 저희 쪽에서도 피해가 너무 큰 거 같다. 과거 (발매) 앨범들도 다 놓고 나와야 하고 (광고) 브랜드 계약도 다 어도어에 물려 있다'라고 우려하면서도, 보유한 주식 7천억 원가량이 하이브와 협상할 때 하이브를 '협박할 것'이 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민 전 대표가 '이게 협박할 거리가 되니?'라고 묻자, 부대표는 '협상 카드는 될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도 "민희진은 (하이브에게) 협박거리가 안 된다는 취지로 회의적인 반응을 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바라본 재판부는 "(이들의 계획) 실현 가능성도 의문"이라며 "이모(부대표)도 '협상 카드는 될 거 같다'라고 말하니 협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부대표도 뉴진스 멤버들의 탈퇴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점, '전속계약 해지 주장할 때'라는 가정(if) 문구를 사용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이 카톡만으로는 (민 전 대표 등이 뉴진스의) 전속계약 해지를 계획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밝혔다.
'카피'와 '밀어내기' 의혹, '공익적 성격' 인정
'카피'와 '밀어내기' 등 민 전 대표의 '문제 제기'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라는 게 재판부 시각이다. 민 전 대표는 하이브가 지분을 80% 가진 대주주인 상태에서는 어떤 구상을 해도 실현하기 어려우니 부대표 등과 나눈 대화는 일종의 '소설'에 가깝고,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의 신인 걸그룹 아일릿(ILLIT)이 불과 데뷔 2년도 되지 않은 뉴진스를 '카피'(복사·복제)한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강조해 왔다.
먼저 '카피' 의혹 제기는 '주주간계약의 중대한 의무 위반'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운을 뗐다. 민 전 대표가 발표한 입장은 "'아일릿의 전체적인 인상이 뉴진스와 유사하다'는 취지"이기에, "단순한 의견이나 가치 판단으로 보이고 사실에 대한 적시라고 보기 어렵"고, 따라서 '사실 적시'가 전제되어야 하는 '허위 사실 유포'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아일릿이 데뷔 직전 한 명이 빠지면서 5인조로 된 점, 메인 보컬이나 고음을 부각하지 않고, 포지션 경계를 모호하게 가져가는 등의 형태가 뉴진스와 유사하다고 평가한 증권사 보고서를 인용했다. 재판부는 뉴진스 기획안이 빌리프랩 측에 전달된 것으로 보여, "뉴진스 기획안이 아일릿 제작에 반영되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뉴진스 부모들은 탄원서에서 이 문제('카피')를 제기했는데 설령 민희진 측이 부모들을 설득해서 이러한 탄원서 등을 제출했다고 할지라도 부모가 자필로 탄원서를 제출하거나 컴퓨터로 작성한 문서에 서명한 이상 이것은 해당 부모의 의견으로 봐야 할 거 같다. 민희진 측이 부모들의 착오를 일으켰다고 하면 문제가 되는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 카피 이슈는 유사성에 대한 의견이므로 사실에 대한 착오를 전제로 한 '착오' 개념이 성립되기가 다소 어렵다. 다른 증거로 인해 착오를 일으켰다는 자료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카피' 의혹이 2024년 10월 국회 국정감사(국감) 주제로도 선정됐다고 언급한 재판부는 "아일릿 데뷔 이전에 티저 이미지가 공개됐을 때 뉴진스와의 유사성 논란이 제기되었고 빌리프랩 대표이사 답변을 바탕으로 보면 이러한 논란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사전에 (이와 관련해) 어도어와 사전 협의하거나 양해 구했다고 할 만한 자료가 없어 보인다"라고도 했다.
증권사 보고서 중 '아일릿이 뉴진스의 노하우를 흡수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라는 부분을 인용한 재판부는, 이로 인해 하이브는 주가에 긍정적 효과를 얻지만 어도어는 유사한 이미지를 가진 경쟁자 출연으로 시장 잠식의 우려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하이브가 지분 80%를, 민 전 대표가 20%를 보유했기에, 어도어 내에서 "대주주와 소수 주주와의 이해 충돌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할 수 있다"라고 한 재판부는 "걸그룹간 유사성이 강할수록, 시간적 근접성이 가까울수록 이러한 우려는 증가한다"라며 "문제는 아무런 사전 협의나 양해를 구하는 절차가 없었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유사성 등 문제를 제기하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낸 것은 주주간계약의 이행이고, 피고 민희진이 제기한 뉴진스 카피 문제는 어도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허용되는 경영상 판단 재량 범위 내로 볼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음반 밀어내기' 의혹에 관해서는 업무용 도구인 슬랙 대화에서 구체적인 조건과 '밀어내기'라는 단어가 나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밀어내기를 의심할 만한 단서가 있다고 판단된다"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초동(발매 일주일 동안의 판매량) 물량을 부풀려서 차트 순위를 홍보하는 것은 공정한 유통을 해하는 행위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할 것"이라며, 비록 하이브는 회사 방침이 아닌 내부 직원의 임의 판단으로 이런 일이 이루어졌다고 해명했지만 '관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밀어내기' 문제 제기는 공적 인물의 공적 관심사,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항에 해당되고 그 내용도 진실이라고 할 것이고, 일부 표현 같은 경우는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 적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대한 사실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인정받는다"라며 "('밀어내기 의혹 제기 자체만으로는) 이 사건 주주간계약을 해지할 만한 중대한 계약 위반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하이브는 '민 전 대표의 허위 사실 유포로 하이브의 시총(시가총액) 가치 8천억 원이 증발했다'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 전 대표는 내부 고발 메일로 사안을 내부에서 해소하려 했으나, 하이브가 민 전 대표 등 어도어 대상 감사에 들어갔다는 기사가 2024년 4월 22일 오후 1시 33분에 단독 보도되면서 "갈등이 표면화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주주간계약 해지 및 주식매매대금 청구 소송에 다양한 사안이 연결돼 있었고, 재판부가 1심 선고에서 '카피' 관련 판단도 내린 만큼, 아직 진행 중인 빌리프랩-민 전 대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