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 <너를 위해 기도한다>라는 작은 책을 썼다. 손주들을 위해서 조부모들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 지를 정리한 기도문 모음이다. 그 글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다음세대를 위해 기도한다고 말할 때, 그 기도는 과연 무엇을 바꾸는가?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신앙이 세대마다 옅어지는 현실 앞에서, 기도는 여전히 의미가 있는가? 아니, 기도는 여전히 필요한가? 이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고, 그래서 더 오래 붙들게 된 질문이었다.
교회는 다음세대를 염려한다. 그 염려는 정당하다. 아이들이 줄어들고, 청년들은 교회를 낯설어한다. 우리는 더 나은 방법을 찾고, 더 효과적인 전략을 고민한다. 그러나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우리는 가장 단순한 것을 너무 빨리 포기해 버린 것은 아닐까? 믿음이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설명과 설득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되었을까?
믿음은 언제나 설득의 결과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설명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종종 교리나 논리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 기도는 들리지 않았고, 즉각적인 변화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사실 하나가 마음 어딘가에 남아 삶의 방향을 다시 묻게 했다.
<너를 위해 기도한다>는 아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그 글은 어른들을 향해 있다.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신앙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향한 글이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우리가 다음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이 정말 더 많은 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더 오래 기도하는 것일까?
부모는 바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늘 급하고 구체적이다. 먹이고, 재우고, 가르치고, 보호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신앙은 종종 관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조부모 세대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이미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배웠다. 그래서 그들은 결과를 통제하려 하기보다, 하나님께 맡긴다. 기도는 그 맡김의 언어다. 나는 교회에서 손주의 이름을 불러 기도하는 어른들을 보며, 기도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그 기도는 상황을 즉각 바꾸지 않는다. 아이가 당장 더 믿음이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기도는 아이의 삶 주변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세운다. 언젠가 아이가 길을 잃을 때, 돌아올 수 있는 방향을 남겨 둔다.
교회가 나이를 먹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교회의 평균 연령일까? 아니면 기도하는 어른이 사라지는 것일까? 노년의 신앙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신앙이다. 그리고 다음세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신앙은, 어쩌면 바로 그런 신앙일지도 모른다. 물론 기도가 모든 문제를 즉각 눈에 보이게 해결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기도는 세상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수단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거나 통제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과 현실 앞에 다시 서게 되는 자리다. 그런 의미에서 손주를 위한 기도는 아이의 미래를 보장하는 주문이 아니라, 그 아이를 반복해서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신앙의 선택에 가깝다. <너를 위해 기도한다>는 그래서 하나의 제안이고,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질문이다.
아이의 이름을 불러 기도하는 어른이 있는가? 그 질문은 교회의 규모나 프로그램이 얼마나 근사한가를 묻지 않는다. 신앙의 핵심을 묻는다. 믿음의 유산은 눈에 띄는 성과로 남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의미가 드러난다. 한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기도가, 인생의 어느 순간 조용히 힘을 발휘한다. 기도는 느리다. 그러나 그 느림 때문에, 기도는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기도를 믿는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이는 시대에도,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 하나님께 맡기는 이 단순한 행위가 다음세대를 향한 가장 깊은 사랑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오래 남는, 그리고 가장 묵직한 믿음의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