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다카이치-트럼프'…'가쓰라-태프트'

120년 전 '비밀 외교 야합'에 속절없이 당한 대한제국
일본 자민당 총선 압승에 대처할 치밀한 전략 필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8일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승리한 집권 자민당 후보 이름 위에 꽃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일본 집권 자민당이 8일 실시된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종전 의석수 198석보다 118석이 늘어난 316석을 차지해 1955년 창당 이래 최다 의석 기록을 갈아치웠다. 비례대표 후보가 부족해 14석을 다른 당에 넘겨주기까지 했다.
 
자민당 단독으로 개헌 발의선인 3분의 2(310석)를 넘어섰고, 연정 파트너 일본유신회(36석)를 포함하면 352석으로 전체 465석의 75%를 넘는다. 총선 이전 232석으로 과반(233석)이 안됐던 연립여당은 이제 개헌 발의는 물론, 여소야대인 참의원(상원)에서 부결한 법안도 재의결해 통과시킬 수 있는 '슈퍼 정권'으로 변모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로 '역할 모델'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넘어선 강력한 국정 장악력을 손에 쥐게 됐다. 브레이크 없는 '1극 체제'의 탄생으로 평화헌법 개정, 무기 수출, 국가정보국 창설 등 강경 우익 노선의 가속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유일한 걸림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총선 결과가 발표되자 곧바로 "보수적이고 힘을 통한 평화라는 의제를 통과시키는 데 큰 성공을 거두길 기원한다"며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확인했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우리 동맹이 지닌 잠재력은 무한하다. 양국은 물론 그 너머까지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도록 함께 힘을 모으자"고 화답했다.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라는 다카이치의 선거 슬로건은 서늘한 한기를 동반하며 120년 전을 떠오르게 한다. 믿었던 미국에게 뒤통수를 맞고 참혹하게 버려졌던 1905년 11월의 그날을.
 
1882년 5월 22일 조선은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조선이 서구 국가와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다. 인천 제물포에서 있었던 조약 체결식에는 조선의 전권 대사인 역관(譯官) 이응준이 만든 최초의 태극기가 내걸렸다. 조약은 미국에 치외법권과 최혜국 대우 등 특혜를 줬지만 약소국인 조선을 위한 '거중조정(居中調整)' 조항도 포함했다. 제3국의 압박이 있을 경우 서로 돕기로 명문화한 것이다. 조선 조정은 미국을 진정한 친구로 여기게 됐다.
 
7년이 흘렀다. 조선은 그사이 대한제국이 됐다. 그러나 힘을 키운 일본의 침탈 야욕은 갈수록 커졌다. 고종은 미국을 떠올렸다. 1904년 11월 영어에 능통하고 미국 선교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청년 이승만을 미국에 밀사로 급파했다. '거중조정' 조항을 근거로 일본을 막아 대한제국의 주권을 보장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이승만은 10개월 만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청원서를 전달했지만 허사였다. 그 1주 전에 미국과 일본은 모종의 비밀 협약을 맺었다.

서울 중구 정동 중명전에서 시민이 을사늑약(1905년 11월 17일) 재현 모습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1905년 7월 29일 가쓰라 다로 일본 내각총리대신과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국 전쟁부 장관은 도쿄에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었다.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식민 지배를 상호 인정한 것이다. 정식 조약이 아니라 각서 형태로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다. 3개월여 뒤인 11월 17일 끝내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이로 인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한 공사관을 가장 먼저 철수시켰다. 한·미 양국이 공식 체결한 조약은 미·일간 비밀 야합에 밀려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힘 없고, 못 살고, 국제 외교에 어두운 약소국의 외교 문서는 종이조각에 불과했다.
 
20세기 초의 대한제국과 21세기 초반의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이다. 근대화를 꿈꾸던 전제군주국에서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자 군사 강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힘의 논리와 국익 우선주의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국제 관계는 여전하거나 더욱 복잡해졌다.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해 '전쟁 가능한 보통 국가'로 복귀한다는 것은 다카이치 총리의 오랜 지론이다. 양안 문제로 중국과 대치 중인 가운데 일본이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할 경우 동북아는 격랑에 휩싸일 것이다.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참의원마저 장악해야 하므로 2028년 7월 선거까지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당장 개헌 문제가 부각되지는 않겠지만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경우 동북아 안보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동맹국 방위와 관련해 '당사국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 다카이치 내각에 어떻게 작용할지도 주목된다. 미 국방부는 2026 국가방위전략에서 "심각한 위협에 대해서는 동맹국이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하며 미국의 지원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자칫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용인하는 것으로 읽혀질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한·일 간에는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정상 셔틀외교 재개 등으로 새로운 우호 협력 관계가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다카이치 총리가 우경화 행보와 개헌에 드라이브를 걸 경우 상황은 즉각 반전될 것이다. 오는 22일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의 날' 행사는 향후 한·일 관계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다음달 미국을 방문해 19일 미·일 정상회담을 연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4월 중국을 방문한다. 국제 외교는 물론, 경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대형 이벤트들이다. 눈을 부릅뜨고 귀를 한껏 열고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국가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모든 머리와 입과 손발을 동원해 우리에게 이로운 전략을 세우고 펼쳐야 한다. 120년 전의 그날을 상기하며 다시는 뒤통수를 맞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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