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고 성추행까지…"K팝 아이돌을 꿈 꾼 대가는 컸다"

BBC가 추적한 외국인 연습생의 좌절…명성 뒤 사각지대
'학원형 기획사'의 사각지대…K팝 국제화의 민낯 고발
문화산업으로는 성공했지만, 제도적 보호장치는 후진적

K팝 콘서트. 노컷뉴스DB

K팝 아이돌의 꿈을 안고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연습생들이 고액 비용과 불투명한 운영, 성적 피해 의혹까지 겪고 있다는 실태가 영국 BBC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세계적 문화 산업으로 성장한 K팝의 이면에 제도적 공백과 책임 문제가 함께 제기되고 있다.

BBC는 7일(현지시간) 일본 국적의 10대 소녀 미유(가명)를 포함한 외국인 연습생들의 사례를 집중 조명했다.

미유는 2024년 K팝 아이돌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한국에 입국해 서울의 한 K팝 트레이닝 아카데미 6개월 과정에 등록했다. 그는 전문적인 춤·보컬 수업과 주요 기획사 오디션 기회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300만엔(약 2700만원)을 지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과정은 계약 내용과 달랐다는 것이 미유의 주장이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매주 오디션이 열린다고 했지만 단 한 번도 진행되지 않았다"며 "수업 횟수와 훈련 수준 모두 비용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유는 훈련 과정에서 한 상급 직원의 행동으로 심각한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며 혼자 편의점으로 데려간 뒤 허리에 손을 얹고 '몸매가 좋다'고 말했다"며, 사진 촬영 의상 논의를 이유로 사무실로 불러 "무릎에 앉으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미유는 "아이돌이 되고 싶어 왔지만 사기당한 기분이었다"며 "이곳은 꿈을 좇던 장소이자 트라우마를 남긴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BBC는 같은 아카데미에 다녔던 외국인 연습생 2명의 증언도 함께 전했다. 이 중 한 명인 엘린(가명)은 동일한 직원으로부터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연습생은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타 연습생을 향한 부적절한 행동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이들 역시 오디션 기회가 약속과 달리 제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엘린은 해당 직원을 성추행 및 주거침입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그는 회사 역시 별도로 고소했다. 이에 대해 직원과 회사 측은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회사의 법적 대리인은 BBC에 "내부 규정상 여성 직원 동반 없이 여성 연습생 기숙사 출입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며, 기숙사 CCTV 역시 사전 고지된 보호 목적의 설치였다고 반박했다.

BBC 보도 캡처

BBC는 이러한 문제가 개인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사각지대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K팝 트레이닝 업체는 교육부 관할 학원 또는 연예 기획사로 분류되는데, 미유가 다닌 업체는 연예 기획사로 등록돼 교육법의 직접적인 적용을 받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 관할이지만, 훈련 프로그램 자체는 규제나 정기 점검 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교육부 관계자 역시 "현행 제도로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학원형 기획사'를 규제하기 어렵다"고 BBC에 밝혔다.

외국인 연습생을 둘러싼 경쟁 환경도 만만치 않다. BBC가 인용한 업계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국내 기획사 연습생 수는 963명으로, 2020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외국인 연습생 수는 최근 몇 년 사이 늘었지만 전체 비중은 여전히 낮다. 평균 2년의 연습 기간을 거쳐도 데뷔에 성공하는 비율은 약 60%에 불과하며, 외국인의 경우 언어·비자·인맥 장벽으로 진입 문턱은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스타의 성공 사례는 여전히 청소년들을 한국으로 이끈다. 미유 역시 블랙핑크의 태국인 멤버 리사를 보며 K팝의 꿈을 키웠다고 밝혔다. 현재 K팝에는 일본·대만·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멤버들이 활동하고 있다.

BBC는 "세계적 성공 뒤에는 보호받지 못한 실패 사례들이 존재한다"며 "K팝 산업의 국제화에 걸맞은 책임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엘린은 인터뷰에서 "K팝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그만큼 책임도 따른다"며 "이 꿈을 좇는 아이들이 더 안전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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