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소설가 백희성은 스스로를 "특별한 재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이력은 평범과는 거리가 있다. 아시아인 최초로 프랑스 젊은건축가상 '폴 메이몽'을 수상했고,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 사무소에서 일했으며, 건축가가 쓴 소설로는 이례적으로 10만 부 넘게 판매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으로 꼽는 것은 단 하나, 기록이다.
신간 '쓰는 사람'은 2002년부터 20여 년간 이어 온 기록의 시간과, 그 기록이 어떻게 아이디어와 성과로 이어졌는지를 담은 책이다. 그가 써온 노트는 80권이 넘는다. 화려한 문장도, 체계적인 글쓰기 훈련도 없다. 대신 감정 그대로 적은 불평과 낯선 감각, 사소한 메모들이 쌓였다.
비 오는 날 잠을 깨운 빗소리가 싫다고 적은 기록은 '빗방울 실로폰'이라는 디자인으로 발전해 상을 받았고, 정원에 놓인 토끼 석고상에 대한 메모는 '안 읽는 책을 읽게 만드는 책장'의 출발점이 됐다. 저자는 "아이디어는 언제나 오래된 기록 속에 숨어 있었다"고 말한다.
이 책의 특징은 기록의 '방법'보다 기록이 결과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무엇을 적었는지, 그 기록을 어떻게 다시 읽었는지, 어떤 질문을 덧붙이며 생각을 확장했는지를 실제 노트와 함께 공개한다. 기록은 번뜩이는 영감의 저장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어지는 사고 실험에 가깝다.
백희성은 기록을 만능 해법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하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오래 머무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한다. 평범한 자신을 탓하느라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 이들에게, 그는 거창한 목표 대신 오늘의 생각을 적어보라고 권한다.
'쓰는 사람'은 기록을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기록이 어떻게 삶을 조금씩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선택지라는 점을 조용히 전한다.
백희성 지음 | 교보문고 | 2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