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고 깎고 붙여' 되살린 얼굴…전쟁이 낳은 성형외과의 시작

1차 대전 병사들의 얼굴을 재건한 해럴드 길리스 '얼굴 만들기'

시드니 벨덤 하사는 파스샹달 전투에서 전사자 시신 수습 중 기적적으로 숨이 붙은 채 발견돼 후송됐다. 그는 길리스의 집도 아래 거의 40번의 얼굴 재건 수술을 받았다. 벨덤 하사는 병원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해 이후 60년을 더 살았다. 우측 사진은 헤럴드 길리스와 '페이스 메이커' 영문판.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는 인간의 얼굴을 무참히 파괴했다. 기관총과 포탄, 파편이 난무한 전장에서 병사들은 코가 날아가고, 턱이 부서지고, 얼굴 한쪽이 사라진 채로 살아 돌아왔다. 이들은 의료 기록에 'GOK(God Only Knows)'라는 표식으로 남았다.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부상자들이라는 뜻이었다.

린지 피츠해리스의 신간 '얼굴 만들기'는 이 절망의 현장에서 현대 성형외과의 기초를 세운 외과의사 해럴드 길리스(1882-1960)의 삶과 그가 살려낸 얼굴들의 기록을 따라간다. 저자는 피와 뼈, 고름이 난무하던 전쟁 병원의 풍경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다시 인간의 존엄을 복원하려 했던 의료의 역사를 집요하게 복원한다.

길리스는 전쟁 발발 당시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적십자에 자원해 서부전선에 투입됐다. 그는 프랑스·미국계 치과의사 찰스 발라디에에게서 골이식술을 배우며 안면 재건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후 1916년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 근교 시드컵의 퀸스 병원에 얼굴 재건만을 전담하는 병동을 구축했다. 사실상 세계 최초의 전문 성형외과였다.

책은 길리스의 혁신을 '기술'이 아니라 '과정'으로 보여준다. 그는 환자의 갈비뼈를 떼어 코의 연골을 만들고, 팔이나 가슴에서 피부를 떼어 얼굴에 붙였다. 피부판이 혈관과 연결될 때까지 팔을 얼굴에 고정한 채 몇 주를 버텨야 하는 수술도 있었다. 실패와 감염, 재수술은 일상이었지만 길리스는 기록과 표준화를 멈추지 않았다.

가장 인상적인 사례 중 하나는 파편에 코 대부분을 잃은 시드니 벨덤 상사다. 그는 약 40차례에 이르는 수술 끝에 얼굴 형태를 되찾았고, 병원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해 이후 60년을 더 살았다. 또 다른 환자 월터 여오는 1917년, 현대적 의미의 피부이식 수술을 받은 최초의 사례로 기록된다. 불에 탄 얼굴 위에 목과 가슴의 피부를 이식해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고, 그는 다시 현역으로 복귀했다.

열린책들 제공

'얼굴 만들기'가 주목하는 것은 얼굴 복원이 단순한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얼굴이 훼손된 병사들은 영웅 대접은커녕 혐오와 회피의 대상이 되곤 했다. 길리스는 그래서 병동에서 거울을 치웠다. 환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처음 마주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수술이 진행되며 얼굴의 형태가 돌아오자, 병사들의 태도와 정신 상태도 달라졌다. 콧수염을 다듬고, 사람들과 시선을 나누기 시작했다.

저자는 또한 길리스가 사진과 미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수술 전후를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과 의료용 초상화는 치료 기록이자 교육 자료였고, 훗날 현대 성형외과의 교과서가 되었다. 카메라는 객관성을, 그림은 구조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며 의학과 예술의 협업을 가능하게 했다.

'얼굴 만들기'는 성형수술을 미용 산업의 역사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썰고 깎고 붙이는' 고통스러운 수술이 어떻게 인간을 다시 사회로 돌려보냈는지를 보여준다. 전쟁이 만든 최악의 상처 앞에서, 얼굴을 되찾는 일은 곧 삶을 되찾는 일이었다. 현대 성형외과는 그렇게 탄생했다.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3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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