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전예진의 첫 장편소설 '매점 지하 대피자들'은 번아웃과 무기력에 빠진 청년의 자발적 은둔을 출발점으로, 고립 속에서 다시 형성되는 관계와 질서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선우는 3년 차 직장 생활을 끝내고 "아무 말도 듣지 않고 누워 지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깊은 산속 '고라니 매점'을 찾는다. 매점 지하에는 숙박이 가능한 비밀 공간 '굴 호텔'이 있고, 투숙객들은 헤드랜턴과 야전삽을 받아 직접 땅을 파 자신의 거처를 만든다.
굴은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라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처음엔 고된 삽질에 당황하던 선우는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오히려 집중과 잠의 안정을 되찾고, 굴은 세상에서 도망친 이들에게 또 다른 생활의 리듬을 제공한다.
이곳에는 알코올 중독자, 실패한 사업가, 가족과 단절된 인물 등 각기 다른 사연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라운지 역할의 지하 공간에서 느슨한 연대를 이루며, 서로의 실패를 공유한다. 작품은 자발적 은둔이 완전한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역설을 따라가며, 인간이 타인과의 연결을 완전히 끊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굴을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인물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연락이라도 하고 지냅시다"라는 말과 함께 남겨지는 마지막 장면은, 불완전하지만 이어지는 관계와 미약한 회복의 가능성을 담담하게 남긴다.
'매점 지하 대피자들'은 은둔과 회피를 통해 오히려 관계의 본질을 되묻는 소설로, 현대인이 겪는 번아웃과 관계의 피로를 절제된 문장과 기발한 설정으로 조용히 포착한다.
전예진 지음 | 은행나무 | 260쪽
2020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김유나의 첫 소설집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은 사기와 배신, 침묵과 공모 같은 선택 앞에 선 보통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면서도 정교하게 그려낸다.
소설집에는 표제작 '내가 그 밤에 대해 말하자면'을 비롯해 총 일곱 편이 수록됐다.
작품 속 인물들은 삶이 버거워질수록 스스로를 속이며 버티지만, 그 거짓은 끝내 진실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김유나는 해피엔드 대신 '덜 거짓된 삶'을 향한 작은 이동에 주목하며, 진실을 감당해야 하는 인간의 한계를 차분히 응시한다.
도박에 빠진 엄마와 살아가는 아이의 시선을 통해 어른들의 배신을 포착한 표제작을 비롯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얽힌 남매의 갈등('이름 없는 마음'), 배신 이후의 선택을 대비하는 두 인물의 서사('랫풀다운'·'물이 가는 곳'), 장기 수험생활과 생계 노동의 현실을 그린 '너 하는 그 일' 등은 가족, 노동, 돈, 돌봄 같은 구체적 조건이 인물의 감정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김유나의 소설은 자극적인 사건보다 감정의 축적과 선택의 균열에 집중한다. 웃음과 씁쓸함이 교차하는 문장은 쉽게 휘발되지 않고, 독자를 현실의 한복판으로 데려간다.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은 삶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지금을 버티는 사람들에게 조용한 위로와 단단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집이다.
김유나 지음 | 창비 | 2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