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재인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한국 수출기업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여기에 미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무효 판결 여부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무효 판결이 내려질 경우 그동안 납부한 관세를 환급받아야 하는데,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의 정산 시점과 맞물리면서 복잡한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인력과 비용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의 부담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락가락 美 관세에 韓기업 "수출 계획에 차질…불확실성 커"
4일 산업통상부와 통상 업계 등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국의 대미 수출품에 대해 '10%→25%→15%→25%'의 상호관세를 오락가락 부과하며 혼란을 키우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협상 타결 약 3개월 만인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자신의 SNS를 통해 "한국 국회는 미국과의 무역 협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돌연 자동차 등 품목관세와 상호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7월 무역 합의를 거쳐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관세를 15%까지 낮추기로 했던 합의를 뒤집은 것이다.
발표 직후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워싱턴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두 차례 면담했지만 관세 인상 방침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이후 조현 외교부 장관과 산업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잇따라 급파됐지만, 미국이 여전히 관보 게재 절차를 밟고 있어 사실상 관세 발효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국내 수출 업계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관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구체적인 수출 계획을 세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수출 기업 관계자는 통화에서 "불확실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필요한 생산 물량을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다"며 "수출 기업들이 장기적인 계획을 짜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4월부터 관세 직격탄을 맞아온 현대차그룹의 경우 미국 시장 내 가격 인상을 자제하며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는 소극적 전략에 머물고 있다.
美대법원 상호관세 판결 변수…"정산 후 나올 경우 환급 절차 복잡"
미 연방대법원의 IEEPA 관련 확정 판결이 임박한 점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IEEPA를 근거로 각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한 것이 적법한지를 두고 막바지 심리를 진행 중이다. 앞서 1심과 2심에서는 위법 판결이 나왔고, 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확정될 경우 한국을 포함한 각국에 대한 상호관세는 법적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통상 업계에서는 하급심에서 위법 판결이 나온 만큼 연방대법원도 관세 무효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무효 판결이 나올 경우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미국에 과다 납부한 관세를 환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등에 따르면 환급 규모는 약 1500억 달러(217조 원)로 추정된다.
문제는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의 관세 정산 시점과 맞물리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CBP는 수입자가 신고·납부한 관세를 검토해 확정하는 정산 절차를 통관일 이후 약 314일이 지난 시점에 진행한다. 지난해 4월 5일 한국산 제품에 10%의 상호관세가 부과된 점을 고려하면, 이달 20일 전후 정산 절차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관세 환급 절차는 CBP 정산 이전에는 비교적 간단하다. 수입 신고 내용을 수정하는 '사후정정 신고(PSC)'만 제출하면 환급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반면 정산이 완료된 이후에는 절차가 복잡해진다. 정산일로부터 180일 이내에 CBP 결정에 이의 제기를 해야 하고, 이에 불복할 경우 국제무역법원 제소 등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해 처리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통화에서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판결이 정산 시점 이후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며 "많은 기업들이 복잡한 절차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방대법원이 상호관세 위법 판결을 내리더라도 효력이 소송 당사자에게만 한정될 가능성도 변수다.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은 관세 환급이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부 한국 대기업들은 관세 환급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미 국제무역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전담 인력이 적고 비용 부담이 큰 중소·중견기업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한아름 수석연구원은 통화에서 "미 국제무역법원 항소 절차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 대기업이 아닌 경우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며 "실제로 협회에도 관련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 '무역장벽 119'로 관세 환급 지원 창구 마련
이에 정부는 관세 환급 등에 대비해 상담 창구를 확대·개편하겠다는 방침이다.
산업부는 지난해 2월 범정부 관세 상담 창구로 운영해온 '관세대응 119'를 '무역장벽 119'로 확대 개편해 관세·비관세를 아우르는 범정부 무역장벽 대응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전날 밝혔다. 산업부는 △관세 환급 대응 상담 △CBP 소명자료 대응 지원 △맞춤형 대체 시장 발굴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관세 납부 이후의 검증 대응과 환급까지 지원 범위를 넓혀 우리 기업들이 수출 현장에서 겪는 실질적인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