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반도체 수퍼사이클과 깊어지는 K자형 양극화

황진환 기자

지난 2024년 1월 총통 선거 취재차 처음으로 대만을 찾은 적이 있다. 당시 수도 타이베이 중심가에서 목격한 모습은 상당히 낯설었다. 신호를 기다리던 수십여 대의 오토바이가 신호가 바뀌자 도로 위로 내달렸는데 배달 등 영업용이 아니라 대부분 직장인들이 탄 출퇴근용이었다.

대만은 1인당 GDP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인데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를 보유한 반도체 강국이다. 그런데 대만 직장인들이 승용차가 아닌 오토바이를 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교통문화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만의 최저임금은 한화로 월 120만원 정도로 한국의 55%에 불과한데 전체 노동자의 1/4 가량이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자료에서도 대만 대촐 초임은 한국에 비해 30~40% 가량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지난해 기준 1인당 GDP가 4만달러에 육박하며 한국과 일본을 추월한 대만의 노동자들은 왜 가난할까? 우선 수출주도형 경제인 대만은 통화가치 절하를 통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을 써왔다. 이에따라 수입물가가 높아지고 실질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됐다.

동시에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위해 임금인상도 억제됐다. 장기간의 독재가 이어진 대만은 중국의 위협 등을 내세워 노동조합을 탄압해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단이 크게 제한돼 왔다. 그 결과 기업과 국가는 부유하지만 노동자는 가난한 기형적인 구조가 탄생했다.

다만, 대부분의 가난한 노동자들과 달리 TSMC 등 초일류 기업 직원의 임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 2024년 기준 TSMC 직원 1인당 평균 총보수는 약 2억 5천만원 수준으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보다 높았다. 정부가 설계한 성장의 과실을 일부 기업과 그 소속 노동자만 누리는 형태의 K자형 양극화가 고착화된 셈이다.

대만과 마찬가지로 최근 한국에서도 K자형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일부 반도체 기업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직원 성과급도 대폭 지급함에 따라 대기업 사이에서도 K자형 양극화가 뚜렷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연합뉴스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타 많은 이익을 내고 이를 열심히 일한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들 기업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기까지 정부의 저금리.고환율 기조와 대미 무역협상 등 측면 지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두 기업이 주도해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5000' 고지에 올라서고, 반도체 수출이 큰 폭으로 늘며 역대급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등 한국 경제 역시 덩달아 양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이는 반도체 등 일부 업종에 국한된 얘기로 다른 대부분의 업종, 특히 내수 기업들은 불황의 늪에 빠져있다.

그 결과 한편에서는 사상 최고 실적에 억대 상여금 얘기가 나오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구조조정 얘기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최근 만난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주가가 급등하니까 경제상황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일부에 국한된 얘기"라며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만 크다"라고 하소연했다.

앞서, 대만의 사례처럼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봐서는 현재 처한 경제상황을 직시하기 힘들다. 특정 기업이나 업계가 이룬 눈부신 성과에는 박수를 보내고 아낌없이 지원해야겠지만 , 불황에 허덕이는 기업과 업계에 대한 관심도 요구되는 이유이다. 행여나 정부 기조나 정책으로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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