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여성 5명 중 1명은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을 경험한다. 2024년 한 해에만 교제폭력 신고는 8만 8천 건을 넘었고,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살인·치사 검거 인원은 219명에 달했다. 그러나 이를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법은 여전히 부재하다.
허민숙의 신간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는 이 반복되는 비극이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실패의 결과임을 짚는다.
저자는 여성학 박사이자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으로, 친밀한 관계 폭력을 오랫동안 연구·분석해온 인물이다. 이 책에서 그는 신체적 폭력 이전에 이미 작동하는 핵심 징후로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를 전면에 세운다.
강압적 통제는 연인·배우자 관계에서 상대의 일상과 선택을 세밀하게 지배·조종하는 비신체적 학대다. 연락·외출·복장·대인관계를 감시하고, 불안을 조성해 복종을 유도하는 이 행위는 학계에서 피해자 살해의 주요 전조로 지목돼 왔다.
책은 '왜 신고해도 달라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출발한다. 반복 신고에도 경찰의 소극적 대응, 쌍방폭행 판단의 모호성, 반의사불벌 규정의 한계가 어떻게 피해자를 더 위험한 상황으로 내모는지 구체적 사례로 보여준다. 특히 결별 이후 이어지는 스토킹과 '비치명적 목조름'은 살인의 리허설로 작동하지만, 현행 제도는 이를 충분히 제재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피해자가 관계를 끊지 못하는 이유를 개인의 선택이나 성향으로 환원하는 시선을 경계한다. 가스라이팅과 경제적 통제, 고립 전략이 결합된 '믿을 수밖에 없는 위협' 속에서 피해자의 주체성은 점차 붕괴된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특징은 없다"는 저자의 단언은, 피해자 비난을 구조적 문제로 되돌려놓는다.
대안 제시는 구체적이다. 저자는 해외 사례를 들어 강압적 통제의 범죄화, 가해자 GPS 위치추적, 의무체포, 직장 내 보호, 사망검토(death review)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사망검토는 사건 이후 책임을 묻는 절차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어디서 실패했는지를 분석해 같은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다.
책은 이러한 장치들이 단발성 보호가 아니라 연쇄적 위험을 차단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는 피해자의 증언과 현장 기록을 통해 친밀성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폭력의 본성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국가와 제도가 그 신호를 읽지 못한 대가를, 왜 개인이 생명으로 치러야하는지 되묻는다.
허민숙 지음 | 김영사 | 2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