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경기 51득점, 3점슛 14개.
'KBL 스타' 허웅(KCC)이 역대급 기록을 쓰는 듯했다. 하지만 두 기록 모두 한국 프로농구 역사에서 1위는 아니었다.
심지어 '한 경기 최다 득점'과 '한 경기 최다 3점슛' 기록은 같은 날 동시에 나왔다. 2004년 3월 7일, KBL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허웅은 2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LG전자 프로농구 5라운드 원정경기 SK전에서 엄청난 경기력을 뽐냈다. 이날 허웅은 31분 16초를 뛰며 홀로 51점을 쏟아냈다. 1, 2쿼터에만 3점포 10방을 꽂아, 전반에만 34득점을 기록했다.
승리는 당연히 KCC의 몫이었다. 봄 농구를 향한 순위 경쟁 중인 KCC는 경쟁팀인 SK에 120-77, 43점 차 대승을 거두고 2연승을 달렸다. 시즌 전적 19승 18패를 기록, 순위도 공동 5위로 끌어올렸다.
허웅의 기록이 'KBL 역대 한 경기 최다 득점 순위' 어느 정도에 위치하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허웅의 51득점은 우지원(당시 모비스), 문경은(당시 전자랜드)에 이어 3위다.
2004년 3월 7일. 우지원과 문경은의 대기록은 같은 날 나왔다. 우지원은 2003-2004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LG전에서 3점슛 21개를 포함해 도합 70점을 터뜨렸다. 문경은은 이날 TG삼보전에서 3점슛 22개로 66득점 했다.
기록이 쏟아진 날이었다. 하지만 축하는커녕 이날은 한국 프로농구의 '흑역사'로 남았다.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인만큼, 모든 팀의 순위가 어느 정도 정해진 상태였다. 경기에 나서는 팀들에게 승패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각 팀은 소속 선수들의 개인 타이틀을 위해 뛰었다. 이른바 '밀어주기 소동'이 일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3점슛 부문'에서 문경은에 3개 차로 뒤지던 우지원은 직전 경기인 2004년 3월 6일 KCC전에서 3점슛 33개를 던져 12개를 몰아치고 순위를 뒤집었다. 이에 문경은도 다음날 TG전에서 3점슛 42개를 난사하고 22개를 성공시켰다. 그러나 우지원 역시 이날 팀의 엄청난 지원을 받아 3점슛 21개를 꽂고 1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파장은 커졌다. '프로농구의 배신', '추악한 담합'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문경은은 당시 이 결과에 대해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뛰는 건데 후회된다. 지난 5개월간 열심히 뛰어온 노력이 허탈하다"고 말했다. 우지원은 "선수들이 도와주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선수라도 나와 같은 입장이라면 똑같았을 것이다"고 했다.
2004년 3월 8일. KBL은 9일 열릴 예정이던 시상식에서 3점슛, 블록슛 부문 시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오기택 당시 재정위원회 위원장은 "내일 시상식에서 3점슛왕과 블록슛왕에 대한 시상은 유보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결국 2003-2004시즌 프로농구 '3점슛왕'은 아무도 받지 못했다. 당시 농구 팬들은 "한편의 생쇼와 코미디였다", "팬들을 우롱하고 기만한 것" 등의 분노 섞인 반응을 내뱉었다. 해당 경기 입장 요금 환불을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2004년 3월 9일. 우지원은 시상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상을 못 받더라도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도리라고 여겨 행사장에 왔다. 7일 정규리그 최종전 경기를 마친 직후 경은이 형에게 전화로 사과했다. 팬들에게도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허웅의 기록은 그래서 더 빛이 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결과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