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한국 관세 인상을 예고한 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급히 방미했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귀국했다.
이런 가운데 미 행정부가 관보 게재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세 인상 발효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조현 외교부 장관을 추가로 급파하고, 대미투자특별법 이행을 위한 사전 준비에 나서는 등 총력 대응에 돌입했다.
김 장관 '빈손 귀국'…"美 관보 게재 준비 중"
3일 산업부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발표 직후 방미한 김 장관은 워싱턴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두 차례 면담했지만, 관세 인상 방침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김 장관은 지난달 3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 정부가 관세 협정을 이행하지 않거나 지연할 의도는 없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며 "상호 이해가 깊어졌고 불필요한 오해는 해소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국회에 계류 중인 대미투자특별법을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장관은 "예산 논의 등으로 법안 논의가 지연됐다는 점을 설명했고, 앞으로는 빠른 속도로 특별법 처리를 진행해 미국 측과 보조를 맞추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터프한 협상가'라고 평한 김 장관을 캐나다에서 급히 미국으로 보냈지만 관세 인상 절차 자체를 막지는 못했다. 김 장관은 "대통령 메시지와 별개로 관세 인상 조치는 이미 시작된 상태"라며 "관보 게재와 제재 준비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통상 관보에 게재되면 관세 인상은 발효 수순에 들어가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발등에 불 떨어진 정부…조현 장관 급파·대미투자 준비 착수
정부는 관보 게재 전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외교·통상 라인을 총동원하고 있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김 장관의 뒤를 이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을 찾아 미 정부 당국자와 연방 의회 인사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협상 파트너인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면담도 예정돼 있다.
외교부도 가동됐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오는 4일 미 국무부가 주최하는 핵심광물 장관급 회의에 참석해, 관세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르면 이달 말 대미투자특별법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일 기자간담회에서 "2월 말이나 3월 초 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상임위 논의를 거쳐 일정 준수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법안 통과 전이라도 투자 프로젝트 예비 검토 등 사전 준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다만 정부는 이번 관세 인상 움직임을 외교 실패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미 정부 내부에서도 러트닉 상무장관을 제외하면 관세 인상 발표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인사가 많았던 것으로 안다"며 "밴스 부통령과의 핫라인을 포함해 기존 접촉 채널을 가동하며 진의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상용 압박 카드? 트럼프 "관세 협상으로 韓 1500억 달러 투자"
일각에서는 미 행정부의 관보 게재가 실제 조치라기보다, 협상 압박을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여러 국가를 상대로 관세 인상과 유예를 반복하며 협상력을 높여온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러한 압박이 성과를 내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관세가 세계 경제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은 틀렸다"며 "관세 협상의 결과로 한국 기업들이 미국 조선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1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향후 한미 간 '2라운드 협상'에 해당할 수 있는 비관세 조치를 염두에 둔 압박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한미는 디지털 규제 완화, 미국산 자동차 수입 확대, 농산물 개방 등 비관세 사안을 공동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실제로 미 의회 안팎에서는 한국의 디지털 규제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어 USTR 대표도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이 특별법은 처리하지 않으면서 디지털 규제법만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의 관보 게재 움직임을 협상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채, 우리 입장을 최대한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