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을 앞둔 2월이다. 새해의 결심이 약해지는 시기, '단것 줄이기'는 가장 흔한 실패 사례 중 하나다. 흔히 이를 개인의 의지 부족 탓으로 돌리곤 하지만, 보건의료 현장에서 느낀 바는 다르다. 건강은 결코 개인이 홀로 감당하는 노력만으로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당류 섭취 현황은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2025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량은 하루 총열량의 7.7% 수준으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기준(하루 총열량의 10% 미만) 이내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 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 특히 여자 청소년의 경우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량이 이미 권고기준을 초과하여 11.1%에 달하고 있다는 점은 예의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평생의 식습관이 정립되는 시기의 과도한 당 섭취는 성인기 만성질환으로 이어지는 잠재적 위험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개인의 건강 위기는 머지않아 사회적 부채로 돌아온다. 실제로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가 하루 총열량의 10%를 넘길 경우 비만 발생 위험은 39%, 고혈압은 66%나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202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액은 연간 16조 원에 달해 이미 음주와 흡연의 피해 규모를 넘어섰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접하는 설탕 한 스푼이 내일의 국가 건강보험 재정에는 작지 않은 부담을, 우리 사회의 '건강수명'에는 가볍지 않은 과제를 남기고 있는 셈이다.
문제의 본질은 당 함량이 높은 제품들로 채워진 우리 주변의 환경에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판기, 편의점 매대의 상당수가 당 함량이 높은 음료와 가공식품으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개인에게만 건강 관리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일상이 온통 달콤한 유혹으로 가득 차 있다면 개인의 굳건한 결심도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환경의 재설계를 위해 정교한 정책들을 시행 중이다. 음료의 당 함량에 따라 등급을 매겨 표시하는 싱가포르의 '뉴트리-그레이드' 는 2022년 시행된 후 시판 음료의 평균 당 함량이 2017년 7.1%에서 2023년 4.6%로 눈에 띄게 감소하는 성과를 보였다. 직관적인 등급 표시만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 '넛지(Nudge)'의 성공 사례다. 영국의 '진열 규제'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계산대 주변이나 입구 등 핵심 길목에 고당류 등 '건강에 덜 좋은' 제품 진열을 금지해 건강에 해로운 선택지를 물리적으로 멀어지게 했다. 이는 강압적인 금지가 아니라, 건강한 선택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선택이 되도록 '일상의 경로'를 재설계한 세심한 정책적 배려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수동적 대처에 머물러있다. 나트륨은 라면 등 일부 제품에 대해 비교 표시제가 시행 중이지만, 당류는 여전히 소비자가 영양정보를 일일이 대조해야 한다. 지난 2011년 도입된 '어린이 기호식품 신호등 표시제(당, 지방 등의 함량을 색상으로 표시)' 역시 권고 사항에 그쳐 유명무실하며, 진열 환경에 대한 제도적 논의는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과제로 남아 있다. 국민의 건강한 선택을 돕는 유무형의 장치들이 정작 구매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 산드로 데마이오 박사는 당류가 높은 가공식품 섭취를 줄이고 신선한 식단으로 전환하는 것은 개인의 비만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가공 공정의 탄소 배출을 줄여 지구의 건강까지 지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다고 강조했다. 즉, 하나의 개입으로 건강과 환경을 동시에 개선하는 '공동이익(Co-benefits)'을 창출하는 것이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정책적 지향점은 분명하다. 건강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고도 가장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체계적인 당류 저감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비만 예방과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단맛의 유혹보다 건강한 일상이 더 가까운 우리 사회를 기대해 본다.
김헌주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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