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對美) 투자 이행 속도를 문제 삼아 기존 관세 합의를 뒤집겠다고 예고하면서, 한미 통상 환경이 다시 불안정 국면으로 들어갔다.
관세를 협상 카드로 들었다 놨다 하는 트럼프식 압박이 반복되자, 우리 국회와 정부에서도 "불필요한 갈등"이라는 공개적인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관세 재인상 절차 착수…"관보 게재 준비"
2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29~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상무부를 찾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이틀 연속 담판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후 귀국 현장에서 김 장관은 "관세 인상 조치는 이미 시작된 것"이라며 "(미국이) 관보 게재를 준비하고 제재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관세 인상 발언이 단순한 위협을 넘어 행정 절차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식 관세 압박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상시적 리스크'로 굳어질 수 있다고 본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정부가 돈을 받고 수입 허가권을 줘 관세와 같은 효과를 내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관세와 유사한 무역 장벽은 계속 이어지는 상수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에서 '상호관세'가 무효로 판단될 경우를 대비해 '수입 허가제' 도입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대법원이 상호관세를 위법으로 판단하면 직접적인 관세 부과 대신 수입 허가권 발급 비용을 받는 방식으로 사실상 관세와 같은 효과를 내겠다는 구상으로 해석된다.
국회도 공개 비판…"MOU 신뢰 흔들릴 것"
이 같은 상황에서 정치권에서도 미국의 압박 방식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전날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법안 처리가 늦어졌다는 이유로 갑자기 관세를 다시 올리는 방식의 협상이 지속된다면, 한미 간 맺은 양해각서(MOU)나 조인트 팩트시트가 앞으로도 지켜질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굉장히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상호 존중과 양해 속에 만들어진 양해각서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해당 국가의 절차를 미국이 존중해줘야 하지 않느냐"며 "이런 방식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덧붙였다.
정부 역시 통상 환경 악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전날 '2026년 1월 수출입 동향' 자료를 발표하며 "최근 미국의 관세 정책과 보호무역 확산 등으로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미국과의 협의를 이어가는 한편, 품목·시장·주체 다변화를 통해 대외 여건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무역 구조를 확립할 수 있도록 가용한 모든 자원을 활용해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美대법원 변수·디지털 규제 불만…트럼프 압박 배경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자신의 SNS를 통해 한국 국회의 대미 투자 관련 입법 지연을 문제 삼으며 한국산 자동차·목재·의약품 등에 적용되는 관세를 15%에서 25%로 다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11월 협상을 통해 관세를 낮추는 데 합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전격적으로 뒤집고 원상 복구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압박 배경에는 복합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미국 연방대법원이 상호관세 부과의 적법성을 조만간 판단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관세의 법적 기반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판결 이전에 관세 압박을 통해 투자 이행을 서두르려 한다는 해석이다.
여기에 쿠팡 제재와 디지털 규제 추진 등 미국 기업을 겨냥한 조치에 대한 불만도 작용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관세가 단순한 무역 수단을 넘어 동맹국의 정책 방향까지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관세율이 언제, 어떤 수준으로 확정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생산·조달·가격 전략을 구체화하기 어렵고, 연간 사업계획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통상 압박이 반복될수록 기업들은 비용 증가뿐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 자체를 리스크로 떠안게 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상시적인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만큼, 한국 역시 이를 단기 변수로만 보지 말고 구조적 리스크로 전제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협상과 함께 공급망 다변화와 수출시장 재편 등 중장기 대응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