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정치 생물의 퇴화와 멸종 위기

국민의힘이 한동훈 전 대표의 제명을 확정한 29일 오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입장 발표를 마친 후 소통관을 나서고 있다. 황진환 기자

"정치는 생물이야."
 
1990년대 후반 정치권을 출입하면서 정치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가운데 하나다.
 
당시 여야 원내총무(지금의 원내대표)를 주로 취재했는데, 오전에 합의됐던 내용이 오후에 뒤집히고 전혀 다른 내용으로 재합의되는 사례가 빈번했다. 기자들이 그 경위를 물었지만 원내총무들은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로 구체적인 설명을 대신 하고는 했다.
 
하도 많이 쓰이니 '정치경제학'이나 '정치사회학'처럼 '정치생물학'도 독립된 학문으로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 되면 국회의원 상당수가 '정치생물학' 박사 학위는 쉽게 딸 수 있을 것이라는 농담도 하고는 했다.
 
당시의 원내총무들은 정치가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며 안팎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 진화한다는 긍정적 취지를 담고 싶었을게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지난 주 국민의힘이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했다. 제명 처분은 장동혁 대표가 단식 농성 이후 당무에 복귀하자마자 이루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사무총장으로 발탁됐다. 정당의 사무총장은 예산과 조직, 공천 실무를 담당하는 핵심 요직이다. 예전에는 최소 3선은 돼야 맡을 수 있었던 자리다. 재보궐 선거로 임기 중도에 뽑힌,  이른바 '0.5선'의 장동혁 의원에게 한 전 대표는 이런 중책을 맡긴 것이다.
 
22대 총선 참패 이후 한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되자 장 대표는 수석 최고위원으로 호흡을 맞췄다.
 
장 대표의 친한동훈 행보는 윤석열 일당의 계엄 직후까지도 유지됐다. 한 전 대표는 계엄 해제 국회 표결을 강력 촉구했고 장 대표도 표결에 참여했다. 대다수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에 불참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계엄 해제 이후 탄핵 국면에서 보수의 분화가 일어나자 두 사람의 입장은 확연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위헌 위법적 계엄'이라는 한 전 대표에 맞서 장 대표는 '이번 계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며 계엄을 옹호했다. 장 대표는 윤석열의 체포를 저지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한남동 관저 앞 집회에도 참석했다. 이 후 장 대표의 행보는 강성 보수로 기울었다. 그리고 당 대표에 오른 뒤에는 한 전 대표를 결국 쳐냈다.
 
이같은 장 대표의 극적 변신은 정치생물학적 고찰 대상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고찰 결과는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진화 보다는 퇴화에 가깝기 때문이다.
 
통일교·공천헌금 '쌍특검'을 요구하며 8일째 단식을 이어가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단식을 중단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윤창원 기자

생물의 생식 방식은 크게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으로 나뉜다. 무성생식은 암수 구분 없이 자기 스스로를 분열해 판박이 개체를 재생산한다. 자가 분열을 하기에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유전자가 동일하다. 반면 유성생식은 암수가 만나 유전자를 절반씩 제공하며 새로운 개체를 만든다. 이 개체는 부모와는 다른 유전자 구성을 갖게 된다.
 
생물학자들은 무성생식이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고 말한다. 생존에 유리한 환경에서는 단순한 생식 방식으로 개체수가 급증할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면 단순한 유전자 구성 때문에 적응력이 떨어져 멸종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유성생식은 유전자가 섞이면서 생물종이 다양해진다. 환경이 변해도 살아 남는 개체가 있어 종의 명맥을 유지하고 끝내는 번성한다.
 
장 대표 체제의 국민의힘은 정치생물학적으로 보면 무성생식에 가깝다. 다른 유전자와 섞이는 것을 거부하며 강성 보수 유전자만을 단순 복제해 내기 때문이다.
 
이런 무성생식으로는 자신이 말한 '이기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스스로 변화할 수도, 변화에 적응할 수도 없고, 따라서 이길 수도 없다.
 
무성생식만을 고집한다면 보수의 멸종까지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를 장 대표와 국민의힘은 새겨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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