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바둑의 과거와 미래를 상징하는 두 기사가 격돌했다. 한 시대를 연 손과 한 시대를 열 손의 만남이었다. 30일 오후 1시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 이곳에서 살아있는 바둑 신(神)과 갓 입단한 신예(新銳) 간의 특별대국(SOOPER MATCH 세대를 잇다)이 열렸다.
대결 주인공은 조훈현(72) 9단과 유하준(9) 초단. 앞서 63년 세월을 뛰어넘는 대국이 예고돼 관심을 모았다. 이날 1962년 9살에 입단한 바둑 천재(조훈현)가 2025년 9살에 입단한 바둑 천재(유하준)에게 한 수를 지도한 명승부가 펼쳐졌다.
조훈현은 지난 1962년 9세 7개월 5일의 나이로 프로에 입단했다. 유하준은 2025년 12월 18일 조훈현을 제치고 최연소 입단 기록을 새로 썼다. 9세 6개월 12일에 세운 신기록이다. 60년 이상 지속된 "9세 입단은 조훈현이기에 가능했다"는 말을 뒤집은 사건이었다.
30일 또 한 번의 사건이 만들어졌다. 세대를 뛰어넘은 두 천재의 만남은 그 자체가 바둑 역사에 남을 사건이었다. 전설은 건재했고, 천재는 자라고 있었다. 조훈현은 타임머신을 탔다. 바둑판 건너편에는 9살의 자신이 앉아있었다.
이날 대국 전부터 스튜디오 바둑 기사 대기실에는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조훈현이 먼저 기사 대기실에 들어왔다. 아내 정미화(69) 씨와 함께였다. 잠시 후 유하준이 스승인 한국프로기사협회 한종진 회장(9단)과 함께 도착했다.
한 회장은 한복 정장을 차려 입은 대선배 조훈현에게 "참 고우시네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조훈현은 바로 옆 유하준과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대국 전 사적인 대화를 삼갔다. 과거 제자 이창호 9단과의 대국에서도 늘 그랬다. 대신 그의 아내 정씨가 "할아버지한테 살살해라"란 말로 분위기를 바꿨다. 정씨는 과거 남편과 이창호의 대결에서도 분위기를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영화 승부에서 등장한 장면이다.
이날 대국은 유하준이 흑을 잡고 덤을 주지 않는 '정선' 방식으로 치러졌다. 조훈현은 281수 만에 백 2집 승을 거뒀다. 막 입단한 유하준은 '전설' 조훈현을 통해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전신(戰神)'으로 불린 조훈현과 신예의 대결답게 초반부터 격전이 벌어졌다. 좌상 전투에서 흑은 요석 흑 두점을 버리는 기지를 발휘해 우위를 잡았다. 그러나 백은 노련하게 중앙을 삭감하며 집으로 추격했다. 금세 국면이 미세해졌다. 이후 끝내기에서 백은 득점을 올리며 역전에 성공했다.
대국 후 조훈현은 유하준에게 아껴둔 말을 쏟아냈다. "대국 도중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고 전했다. 극찬이었다. 이어 "대국 내용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은 맞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제2의 신진서'가 될 수 있을지는 노력 여하에 달렸다. 창호(이창호)가 그랬듯, 남들이 4~6시간 공부할 때 10시간, 20시간 공부해야 일류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날 대국을 해설한 박정상 9단도 유하준을 칭찬했다. "듣던대로 독창적인 수법을 구사해 놀랐다"며 "전투나 판단력 부분에 있어서 천재적인 재능을 갖췄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솔함과 계산적인 부분의 약점을 보완하면 세계 최고의 기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평가했다.
이번 대국의 제한시간은 각자 30분에 매 수 추가시간 30초가 주어지는 피셔 방식(시간 누적 방식)으로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