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인상 경고에도 이재명 대통령과 청와대는 차분한 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외교 현안을 둘러싼 직접 언급을 자제하는 대신, 연일 국내 정책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며 내치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외부 압박 속에서도 민감한 정책 공론화를 이어가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 대통령은 29일 '국민 체감 정책'을 주제로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책 속도전을 주문했다. 그는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은데 시간과 역량은 제한적"이라며 "입법과 행정, 집행 과정에서 속도를 더 확보해 달라"고 당부했다. 입법부와 행정부 전반에 대한 답답함도 숨기지 않았다.
이날 회의에서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의 관세 압박이나 디지털 규제 논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다만 이 대통령은 "외부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당하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싸워줘야지 '잘됐다 저놈, 잘 때리고 있다' 하면 되겠느냐"며 관세 문제 등을 둘러싼 야권의 공세를 에둘러 비판했다.
청와대는 전날 김용범 정책실장 브리핑을 통해 관세 압박의 원인을 국회 입법 지연으로 돌렸다. 김 실장은 "미국의 불만은 100% 국회에서 (대미 투자 특별법) 입법이 지연되는 데 있다"며 국회와 미국 측에 정부의 노력을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분리 전략'을 토대로 이 대통령은 정책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기업을 상대로 한국 주식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강조하며 투자 확대를 요청했고, 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일자리 양극화 대책으로 '기본사회' 논의도 다시 꺼냈다. 그는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진지하게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전날에는 SNS를 통해 '설탕 부담금'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국민 건강권 증진과 지역·공공의료 강화 재원 확보 차원에서 꺼낸 의제지만, 물가 상승과 증세 등 논란이 커졌다. 이에 이 대통령은 "국민 의견을 물었는데 '설탕세 도입'으로 왜곡한다"고 강하게 반발하며 정면 돌파 의지를 보였다.
외교 변수에도 흔들림 없는 행보의 배경에는 경제·정치 상황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발 불확실성 속에서도 코스피가 5200선을 돌파하고, 원·달러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국정 동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국민의힘 내홍이 최고조에 이르며 야권의 견제력이 약화한 점도 부담을 덜어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관세 합의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행동을 예상한 측면도 있다. 김용범 실장은 "앞으로도 이런 일은 늘 발생할 수 있다"며 "'네버엔딩 스토리'라는 말도 그래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 역시 "투자를 압박하기 위한 협상 카드에 가깝다"며 "합의는 이미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차분하게 대응하면 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관세 인상 언급 하루 만에 "한국과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는 특유의 협상 방식이 다시 확인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은 워싱턴 DC를 찾아 각각 미 상무부·무역대표부(USTR) 인사들과 면담에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