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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현대차 노조처럼 반대도 못해봤다"…이미 덮쳐버린 'AI 공포' ② '운전대는 필요없다'…120만 운송 노동자의 '예고된 실직'? (계속) |
지난 29일 오후 서울 청계천. '자율주행 버스'라고 적힌 차량이 승강장에 서 있었다. 탑승해 보니 운전석 자체가 없었다. 대신 비상 상황에 대비한 안전요원이 조이스틱 하나를 들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차량 내부 대형 모니터에는 테슬라의 주행 화면처럼 주변 차량과 행인, 자전거가 실시간으로 감지돼 나타났다. 버스가 출발하자 "세상 참 좋아졌네"라는 말이 승객 6명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여행을 왔다는 A(40)씨는 "미국 FSD(완전자율주행) 영상만 보다가 실제로 타보니 거부감보다는 편안함이 크다"며 "안전성만 보장된다면 누가 운전하든 상관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승객에게는 '편리한 미래'인 이 장면이, 누군가에게는 실직 통보일 수 있다. 운전대조차 없는 버스가 도로를 달리는 지금, 120만 육상 운송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조금씩 위태로워지고 있다.
"3년이면 인간과 구분 불가"… 기술은 이미 와 있다
전문가들은 자율주행 상용화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이호근 교수는 "기술적으로는 이미 레벨 4(고도 자율주행) 단계에 도달했다"며 "이르면 3년 안에 실제 도로에서 인간 운전자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기술적 진척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정부와 지자체의 움직임도 빠르다. 국토교통부는 광주광역시 전역을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로 지정했고, 서울시는 심야 자율주행 택시에 이어 새벽 자율주행 버스까지 도입했다. 이미 서울 강남과 상암, 청계천 등지에서도 자율주행 차량을 쉽게 볼 수 있다.
문제는 속도다. 이 교수는 "영국 산업혁명 당시 방직기 도입을 막으려던 저항이 결국 산업 도태로 이어졌듯, 로봇 택시와 자율주행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기술 발전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노동 현장의 불안감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운전 업무 대체 불가피"… 120만 명의 고용 충격?
자율주행 기술 도입이 고용에 미칠 파장은 비교적 명확하다. 2022년 한국노동연구원과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자율주행 셔틀서비스 도입의 고용영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자율주행 서비스 확산은 운전 업무를 중심으로 뚜렷한 '고용 대체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버스·택시 등 운수업 전반에 자율주행 기술이 도입될 경우, 장기적으로 기존 운전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한다. 2020년 국가데이터처 조사에 따르면 노선버스 종사자는 약 14만 7천 명, 택시 종사자는 26만 명에 달한다. 2024년 데이터처 발표 기준으로 전체 육상 운수업 종사자는 122만 명을 넘어섰다.
보고서는 자율주행 셔틀이 기존 교통수단을 대체할 경우, 버스 분야에서 약 6만 명, 택시 분야에서 약 3만 명의 운전 인력이 장기적으로 감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화물업계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다. 화물차의 경우 지난해부터 국내 모든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 화물차 운행이 가능해졌다. 아직은 보조장치 수준이지만, 장기적으로 완전 자율주행으로 대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부분이 빚을 내 차량을 구입한 '지입 차주' 형태인 만큼, 자율주행으로 대체되는 순간 충격은 치명적이다.
화물업계 관계자는 "화물 노동자들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캐피탈 빚을 지고 차량을 구매해 시장에 진입한다"며 "자율주행 트럭이 상용화돼 일감을 빼앗기면, 트럭은 생계 수단이 아니라 처분조차 어려운 거대한 빚더미가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규직처럼 재취업 지원이나 퇴직금도 없어, 하루아침에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며 "단순한 실직을 넘어 '집단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기계 파괴 대신 대안을"… 노조의 깊어지는 고심
2019년 '타다 금지법' 사태 당시 택시 기사들의 분신과 대규모 도심 집회는 우리 사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하지만 이번 자율주행의 파고는 특정 플랫폼과의 갈등이었던 타다 사태와는 차원이 다르다. 기술 자체와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노동계 내부에서도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피할 수 없는 미래'를 인정하고 실질적인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이삼영 정책위원장은 "과거 타다 때처럼 반대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공감대가 있다"며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해서 기계 파괴 운동, 이른바 러다이트 운동을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다음 달 열릴 대의원대회에서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면서도 "전 영역에 걸친 문제인 만큼 택시뿐 아니라 전 직종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버스 업계는 '안전'을 고리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시버스노조 유재호 정책국장은 "지하철도 자율주행이 가능하지만 돌발 상황 때문에 기관사가 탑승한다"며 "수십 명의 승객을 태운 버스에서 안전요원 없이 기계만 운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인화보다는 인간 노동을 보조하는 형태로 기술이 도입돼야 하며, 이 과정에서 재교육과 전환 배치를 포함한 '정의로운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우한에서 펼쳐지는 미래…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해외에서는 이미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2024년 중국 우한에서는 바이두의 로보택시 '아폴로 고'가 저가 공세로 택시 시장에 진입하자, 생계 위협을 느낀 택시 기사들이 청원과 항의에 나서는 일이 벌어졌다.
현대차 공장의 로봇이 '생산직'을 위협한다면, 도로 위의 자율주행은 '운송직'을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기술 실증과 규제 완화에 무게가 실려 있다.
이호근 교수는 "자연 감소 인력만큼만 자율주행으로 대체하는 등 연착륙 방안을 지금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화물업계 관계자 역시 "기술 전환은 불가피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노동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인공지능은 인류의 삶을 통째로 바꾸겠지만, 부가 한쪽으로 쏠려 양극화를 극단적으로 만들 위험이 매우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과거에는 기본사회 이야기를 하면 '사회주의자', '빨갱이'라는 비난을 들었지만, 이제는 많은 분이 동의한다"며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진지한 대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율주행과 로봇이라는 기술 혁신은 가속화하되,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줄어드는 노동자들을 위해 국가가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누군가의 '예고된 실직' 앞에서, 우리 사회는 이제 기술의 과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해 있다. 사회적 대타협 없는 혁신은 '노동 암살'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기본사회'를 포함한 구체적인 안전망 논의를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