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도심에 주택 6만호를 신속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9·7 부동산 공급' 대책의 후속 조치로, 시장의 관심이 쏠린 다주택자 규제 강화나 부동산 세제 개편은 이번 발표에서 제외됐다. 공급 확대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가운데, 세제 카드는 중장기 과제로 남겨진 셈이다.
서울 용산 등 도심에 총 6만호…"모든 수단 동원, 긍정적 신호"
정부는 29일 서울 3만2천호를 포함해 수도권 도심에 총 6만호를 공급하는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9·7 주택공급 확대 방안의 후속 조치로, 도심 내 대규모 공공 부지와 노후 공공청사를 최대한 활용해 공급 속도를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주요 사업지로는 용산국제업무지구 1만호(기존 6천호에서 4천호 확대), 노원구 태릉CC 6800호, 과천 경마장·방첩사 부지 9800호 등이 포함됐다. 노후 공공청사 복합개발을 통해서는 서울의료원 남측 부지(518호), 쌍문동 교육연구시설(1171호), 수원우편집중국(936호) 등 34곳에서 9900호를 확보한다.
이미 계획돼 있던 용산 지역 물량 7400호를 제외하면, 이번 대책을 통해 추가로 늘어난 순수 신규 물량은 5만 2천호다. 정부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등 관련 절차를 최대한 단축해 2027년부터 순차 착공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은 "유휴부지로 주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관점에서는 공급 규모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정부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하면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조세 개편 방안 준비 중"…세제는 이번 대책서 제외
반면 다주택자 규제나 부동산 세제 개편은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부동산 시장 안팎에서는 정부가 공급 대책을 내놓으면서 세제 방안을 함께 밝히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소장은 "이번 1·29 공급 대책에 세금 이야기를 같이 포함해 버리면 공급 대책에 대한 사항들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구분해서 발표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조세 개편 방안을 조만간 내놓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재정경제부 강기룡 차관보는 이날 대책 발표 브리핑에서 부동산 세제 대책 시점과 관련한 질의에 "보유세와 거래세를 포함한 합리적인 조세 개편 방안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반적인 부동산 세제 개편에 대해서는 "현재 연구용역과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개편 방안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며 신중한 접근 기조를 재확인했다.
양도세 중과는 예정대로…종료 시점은 추가 검토
강 차관보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와 관련해서도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는 예정대로 5월 9일 시행한다"며 "거래 관행과 시장 상황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어 종료 시점과 관련한 세부 일정은 세제당국에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하루 전인 28일 청와대 역시 같은 기조를 밝힌 바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와 관련해 "연장은 고려하지 않는다"면서도 "5월 9일까지 계약된 거래에 대해 실제 양도가 완료될 때까지 한두 달의 유예를 두는 방안은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보유세 등 부동산 세제 개편에 대해서는 "부동산 세제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 한두 달 안에 발표할 사안은 아니다"라며 "장기간, 심층적으로 논의해야 할 주제"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날 세제 관련 방안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시장에는 이미 일정한 신호를 보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동안 세금을 통한 규제에는 선을 그어왔던 기조에서 벗어나, 필요할 경우 세제 강화 가능성도 열어두는 방향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유휴부지를 발굴해 공급하겠다는 접근은 문재인 정부 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실현 가능성이나 실제 입주까지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9·7 공급 대책 발표 이후 오히려 실망감이 커지며 집값이 상승했던 흐름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도 똑같이 실망한 수요자들이 움직이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대통령이 양도세 중과나 보유세 인상,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공급이 미흡하더라도 '지금 사면 손해 볼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세법은 세부 설계가 매우 복잡한 사안"이라며 "공급 대책과 동시에 구체적인 세제 개편안을 내놓기에는 현실적으로 준비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급은 속도전, 세제는 중장기…정비사업 과제는 남아
도심 공급 확대라는 정책 목표는 분명하지만, 신규 공급 계획과 기존 주택 시장을 연결할 수 있는 정비사업 활성화 대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제경 소장은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필요성은 계속 제기돼 왔지만, 이번 대책에서는 관련 내용이 빠졌다"며 "도심 주택 공급의 핵심은 결국 정비사업 활성화"라고 말했다.
주택 공급 확대와 함께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세제 개편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크지 않다. 다만 정치 일정이 현실적인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보유세 인상이나 과세 기준 조정 등 민감한 세제 카드를 꺼내기 쉽지 않다는 점은 정부 안팎에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에 따라 보유세 조정이나 장기보유특별공제 손질 등 구조적 세제 개편은 선거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7월 발표 예정인 '2026년 세제개편안'을 통해 부동산 세제 전반의 방향성과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할 계획이다. 김용범 실장은 "통상 정기 세제는 8월 국회에서 확정된다"며 "그 과정에서 부동산 세제 역시 함께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