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처럼 반대도 못해봤다"…이미 덮쳐버린 'AI 공포'

[AI, 노동 암살 ①]콜센터부터 회계사·개발자까지…소리 없이 사라지는 일자리
"욕받이는 사람 몫, 쉬운 건 AI 몫"…노사 협의 1.5% 불과
신입 채용 사라진 전문직 현장…"성장 사다리 자체가 붕괴"
"AI 도입 고용영향평가제 시급"…사회적 합의 없는 '노동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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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현대차 노조처럼 반대도 못해봤다"…이미 덮쳐버린 'AI 공포'
(계속)

"노사 합의 없는 로봇 도입은 단 한 대도 불허한다." 최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도입에 반발하며 낸 성명은 요란했다. 이른바 '머리띠'로 상징되는 제조업의 투쟁은 눈에 띈다. 그러나 콜센터, 회계사, 프로그래머, 각 가정의 프리랜서 작업실에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밀려나는 노동들이 있다.

인공지능(AI)은 인간을 돕는 '도구'의 탈을 쓰고 들어와, 조용히 노동자의 책상을 치우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AI 도입 이후,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노동의 붕괴' 현장을 취재했다.

"욕받이는 사람 몫, 쉬운 건 AI 몫"… 콜센터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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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도입의 충격파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적나라하게 맞닥뜨린 곳은 콜센터다. 기업들은 'AICC(AI 컨택센터)'가 상담원의 업무 부담을 줄여준다고 홍보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정반대다.

"작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부터 국세청 콜센터에 AI가 도입됐습니다. 그런데 AI는 정해진 답변만 할 뿐, 복잡한 세금 문제는 해결하지 못해요. 20분 넘게 AI와 씨름하다 겨우 연결된 고객들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습니다. 첫마디부터 욕설이 날아오죠."

국세청 하청업체 소속 상담사인 남미경 '모두의 콜센터' 지부장의 증언이다. AI가 단순 안내를 가져가면서, 상담사들은 해결이 불가능에 가까운 악성 민원과 '감정 쓰레기통' 역할만 떠안게 된 셈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중앙연구원의 'AI와 노동 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면, AICC 도입 이후 상담사들의 통화 난이도와 피로도는 급격히 상승했다. AI상담 도입·미도입 사업장 종사자 1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상담 건수 자체는 17.4% 줄었지만 건당 평균 통화 시간은 6.95분에서 7.55분으로 늘었다.

 '보이지 않는 노동'의 증가도 심각하다. AI 상담 내용을 사후 점검하거나 데이터를 입력하는 '근무 시간 외 후처리 시간'은 AI 도입 전 21.25분에서 도입 후 57.94분으로 무려 172.7%나 증가했다. AI가 일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인간이 AI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야근으로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가장 큰 공포는 '고용 불안'이다. AI가 처리하는 콜 수가 늘어날수록, 인간 상담사에게 배정되는 콜 수는 줄어든다. 남 지부장은 "원청은 '콜 수가 줄었으니 인력이 덜 필요하다'며 내년도 입찰 제안서에서 인원을 감축하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장학재단 콜센터에서는 지난해 AI 도입과 함께 51명이 사실상 해고되는 등 인력 감축이 현실화됐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됐다. 한국노총 자료에 따르면, 콜센터에서 AI 도입 시 "노사 협의를 거쳤다"는 응답은 고작 1.5%에 불과했다.

 "내가 내 대체자를 가르쳤다"… 기만적인 '학습 노동'

노동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일자리를 뺏을 AI를 '학습'시키는 데 동원되기도 했다.

한 은행 콜센터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이영선(50)씨는 "몇 년 전부터 회사가 녹취된 상담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한 뒤, 오타를 수정하라는 업무를 시켰다"고 말했다. 당시엔 단순 업무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이는 은행의 AI 상담 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한 데이터 학습 과정이었다.

이 상담사는 "노동자의 동의도 없이 우리의 상담 노하우와 데이터를 AI에게 학습시킨 뒤, 이제는 그 AI가 우리를 대체하려 한다"며 "상담사가 AI의 오타를 수정해 준 결과가 결국 '상담원 연결 축소'와 '채용 중단'으로 돌아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측이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자의 숙련 기술을 '도둑질'해 기계를 가르친 꼴이다. 이 과정에서도 역시 노사 간 협의나 합의는 없었다.

사다리가 사라진다… 전문직 덮친 '주니어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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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전문직의 상황도 심각하다. 과거 엑셀이 주판을 대체했을 때는 생산성이 늘어났지만, 생성형 AI는 신입 사원이 성장할 '사다리' 자체를 걷어차고 있다. 2022년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AI 도입으로 국내 일자리의 13.1%인 327만 개가 대체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특히 전문직 일자리의 59.9%가 AI 대체 가능 영역에 포함됐다.

'미지정 회계사(시험에 합격하고도 수습 기관을 찾지 못한 회계사)' 문제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청년공인회계사회 황병찬 대표는 "현재 약 850명의 청년 회계사가 수습처를 찾지 못해 알바 등을 전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엔 초급 회계사가 단순 업무를 하며 일을 배웠지만, 이제 그 영역을 AI가 대체하면서 기업들이 신입을 뽑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숙련된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거쳐야 할 '저숙련 노동'의 과정이 AI로 삭제되면서, 청년들은 경력을 쌓을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5년 차 서버 개발자 A(29)씨는 최근 채용 시장 분위기에 대해 "신입을 뽑아 키우는 문화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전했다. 그는 "회사 입장에서는 신입을 채용해 교육하는 비용보다, 기존 경력자에게 월 20만 원짜리 AI 유료 계정(구독권)을 사주는 것이 훨씬 저렴하고 효율적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발 현장의 업무 방식은 AI 도입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A씨는 "과거엔 기획부터 코드 작성, 검수까지 인간이 다 했다면, 지금은 AI와 협업해 기획하고 실제 코딩은 AI에게 맡긴 뒤 인간은 검수만 하는 식"이라며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던 '단순 코딩' 과정이 사라지면서, 경력자 1명이 신입 3~4명의 몫을 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신입'의 기준조차 바뀌고 있다. 그는 "예전엔 3년 차부터 경력으로 쳐줬다면, 요즘은 AI를 활용해 즉시 전력감이 되는 5년 차 이상만 찾는다"며 "제 후배들도 아예 서류조차 낼 곳이 없어 힘들어한다"고 털어놨다.

30대 기술 번역가 B씨는 "AI 번역기(기계번역)가 초벌 번역을 하면 사람이 이를 감수하는 'MTPE' 업무가 일의 절반 가까이 됐다"며 "이 때문에 단가도 줄 수밖에 없어, 너무 낮은 단가로 들어오는 일은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번역 업계에서는 AI 도입 이후 최근 1~2년 사이 신규 번역·통역 요청 건수는 약 80% 급감했고, 번역 단가는 3분의 2 수준으로 추락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기술은 죄가 없다, 제도가 없을 뿐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의 '로봇 반대' 투쟁은 사회적인 경종을 울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청 상담사나 프리랜서,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AI 도입에 대해 "잠깐 멈추라"고 말할 권리조차 없는 이들을 돌아볼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우상범 연구위원은 "현재 AI 도입은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노동자와의 그 어떤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되고 있다"며 "기업이 AI를 도입할 때 고용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는 '고용 영향 평가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AI는 아주 조용하고 치밀하게 우리의 일터를 바꾸고 있다. '혁신'이라는 찬사에 가려진 사이, 누군가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됐고, 누군가는 영문도 모른 채 책상을 빼앗기고 있다. 사회적 합의 없이 진행된다면, AI 혁신의 첫 인상은 '노동에 대한 암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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