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싣는 순서 |
| ① 박살난 '천만영화' 시대…숨통 움켜쥔 괴물들 ② 영화로 뜬 톱배우들, 영화를 떠나다 ③ '슬램덩크'가 내리꽂은 뜨거운 감자 '홀드백' ④ '포스트 봉준호'를 찾아서…현실은 '아비지옥' ⑤ K무비 해외 '러브콜' 줄잇는데…정부 '늑장'에 발 동동 ⑥ 지금 여기, 젊은 내일의 'K무비' ⑦ '사활' 건 마지막 승부…신인류 '잘파'를 잡아라 ⑧ 유령이 영화관을 떠돈다, '스크린 독과점'이란 유령이 (계속) |
한국영화 생태계에는 무시무시한 교란종이 산다. 바로 '스크린 독과점'. 코로나19 사태 이전, 그러니까 한국영화 황금기에도 이 구조적 불균형 문제를 경계해야 한다는 사이렌은 줄기차게 울렸다.
그럼에도 정부당국 등은 결과적으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를 방관하고 방치했다. 끝내 한국영화 생태계는 무너졌다. 이 해묵은 유령은 여전히 영화관을 배회하고 있다.
스크린 독과점은 극소수 영화가 상영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기현상을 일컫는다. 이는 대기업이 영화 투자와 제작부터 배급, 상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이른바 '수직계열화'로 가능했다. 쉽게 말해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짧은 기간에 자사 영화를 흥행시키고자 전체 스크린의 80%를 배정하는 식이다.
이로 인해 나머지 수많은 영화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스크린을 나눠 가질 수밖에 없는, 몹시 불평등하고도 불합리한 환경에 놓이는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됐다.
한국예술영화관협회 최낙용 회장은 "우리 영화산업은 왜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이 들어왔을 때 순식간에 무너졌는가, 코로나 19 이후 회복세가 유독 더딘가를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며 "이는 OTT 등 외생 변수가 오더라도 버텨낼 수 있는 기초체력과 자생력을 키우는 데 소홀했던 탓인데, 그 중심에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티켓값도 비싼데 찜해 둔 영화마저 못 본다고?…관객 이탈↑
익히 알려졌다시피 소비자들은 영화 티켓 가격을 큰 부담으로 여긴다. 그러니 특정 영화 한 편이 스크린을 독식해 버린 탓에 보고 싶은 영화를 못 보게 되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관객 이탈 역시 가속화 할 수밖에 없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2024년 영화 상영분야 공정환경 조성을 위한 영화인·관객 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 편의 영화가 대부분의 상영관과 상영시간을 차지하고 있어 보고 싶은 영화를 보지 못한 경험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는 관객 응답이 59.4%를 차지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인근 영화관에서 상영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는 '영화관 관람을 포기하고 OTT나 VOD로 공개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응답 비중('매우 그렇다' 11.2%, '그렇다' 37.6%)이 가장 높았다.
제작사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8억원 미만 제작비를 들인 윤가은 감독 작품 '세계의 주인'이 지난해 개봉해 누적관객수 20만명에 육박했던 이유는 '이 영화 잘 만들었다'는 관객들 입소문을 타고 장기 흥행을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입소문이 나려면 분명 시간이 필요한데도, 스크린 독과점 문제 탓에 많은 영화가 한두 주 사이에 금방 내려가다 보니 관객 평가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고 토로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오늘날 한국영화 위기 국면에서 멀티플렉스가 관객들 발길을 돌리게 만들려면 본래 취지에 맞게끔 다양성을 담보해야 할 것"이라며 "결국 여러 중소 영화에도 스크린을 일정 비율로 일정 기간 배정함으로써 다양한 취향을 지닌 관객들을 10만명씩, 100만명씩 모으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韓영화판만의 해묵은 폐해"…'상한제' 등 해법 찾기에 방점
최대한 짧은 기간에 최대한 많은 관객을 모으려는 '스크린 독과점' 전략은 사실상 의미를 잃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이른바 '천만영화' 시스템이 무너진 까닭이다. 결국 이 둘은 서로 마주보는 거울쌍이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은 회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여타 나라들과 달리 한국 영화산업 회복세가 더딘 데는 스크린 독과점과 같은 불공정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며 "영화 제작 지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러한 고질적인 불공정 부분을 바로잡기 위한 스크린 상한제, 홀드백 등 해법 마련에 업계와 정부, 국회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관객들 역시 영화계 불공정 문제 해법으로 '스크린 상한제' 등 대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진위 '2024년 영화 관람 태도 및 영화제 관련 인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스크린 상한제 도입에 찬성과 반대를 물었을 때 '찬성한다'가 63.8%에 달했다.
이와 관련해 앞서 소개한 영진위 '2024년 영화 상영분야 공정환경 조성을 위한 영화인·관객 인식조사' 보고서에서는 관객들에게 '10개의 스크린을 가진 영화관에서 한 편의 영화가 최대 몇 개 스크린에 상영되는 게 적절한가'라고 물었다.
이에 응답자 45.6%가 '3개관'이라고 답했다. 이어 '4개관'이 26.8%, '5개관'이 18.8%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응답자 72.4%는 한 편의 영화가 30~40% 점유율로 상영되는 것이 적정하다고 여기는 셈이다.
이은 회장은 "대기업들이 '천만영화' 만들기에만 몰두해온 탓에 허리 격인 중간 영화가 사라져 버렸다"며 "돈을 벌기 위해 6개월에 걸쳐 동원해야 할 1천만 관객을 고작 한 달 만에 모으려다 보니, 흥행 중인 영화마저 스크린에서 끌어내리는 식으로 스크린 회전율을 높여왔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같은 업계 특징은 우리나라만이 지닌 해묵은 폐해"라며 "이는 결국 중소 규모 영화들이 가져가야 할 투자 영역조차 사라지게 만들었는데, 현재로서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