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출장 중 별세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시신이 오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운구됐습니다.
닷새 동안 사회장으로 치러지는 장례 첫날부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각계각층에서 조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양형욱 기자 연결합니다. 양 기자.
[기자]
네,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입니다.
[앵커]
오늘도 꽤 추운 날씨 였는데, 첫날부터 시민들 조문 행렬이 꽤나 길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지상 3층에 마련된 빈소에 하루종일 정치권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는데, 그 가운데 첫날인데도 일반 조문객들도 꽤나 많이 오갔습니다.
모두 왼쪽 가슴에 근조 리본을 단 채 정치인들은 대개 침통한 표정이었고, 일반인들 가운데도 눈시울을 붉히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현재 상주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조정식 청와대 정무특별보좌관이 역할을 맡아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앵커]
정치권 인사들 많이 다녀갔다 했는데, 어떤 말들을 남기던가요?
[기자]
김 총리와 정 대표와 함께 우원식 국회의장이 가장 먼저 조문했는데, 우 의장은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애도를 표했습니다.
[인서트: 우리나라 민주주의 산증인이시고 또 민주정부를 만드는데 역대 정권에 큰 기여를 하신 분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힘들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먼저 나서서 그분들의 고통을 치유하려고 했던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십니다.]
이밖에도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과 김부겸 전 국무총리,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습니다.
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입니다.
[인서트: 정말 비통한 마음 가눌 길이 없습니다. 특히 이해찬 상임고문님은 저희 민주당의 별 같은 분이셨거든요. 정말 모든 의원들 포함 정말 비통한 마움 가눌 길이 없고…]
야권에서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 등이 조문을 다녀갔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화환은 오후 3시 40분쯤 도착했습니다.
[앵커]
고인의 시신은 오늘 새벽 국내로 운구됐습니다. 국회의장과 국무총리가 직접 인천공항을 찾은 건 이례적이잖아요?
[기자]
네, 이번 장례는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민주당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기관·사회장으로 오는 31일까지 닷새 동안 엄수됩니다.
사회장은 국가와 사회에 공적을 남긴 인사가 서거했을 때 각계 단체가 장례위원회를 꾸려 치르는 장례 절차로, 최근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예우입니다.
상임 장례위원장은 김 총리가, 시민사회와 정당 상임공동 장례위원장은 각각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 대표가 맡았습니다.
고인의 시신은 오늘 새벽 베트남을 출발해 국내로 운구됐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는 민주당 지도부를 비롯해 의원 수십 명이 참석했고, 정부에서는 김 총리와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자리했습니다.
검은색 운구 차량이 빈소에 도착한 뒤 여권 인사들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관을 뒤따랐습니다.
[앵커]
추모 물결이 정치권을 뒤덮었네요. 이 전 총리하면, 민주당의 전략가, 킹 메이커 등 다양한 수식어가 있을 정도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 아니겠습니까?
[기자]
이 전 총리를 대표하는 수많은 수식어들이 있죠. 그 가운데 '대통령 빼고는 다 해 본 인물'이라는 수식어도 그 중 하나인데요.
7선 국회의원이자 김대중 정부의 교육부 장관, 노무현 정부의 국무총리 등을 역임했고요. 민주당에서는 원내부총무부터 당무기획실장, 최고위원, 당대표까지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이 전 총리를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주역으로 기억하시는 청취자들도 많을 겁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79년 YWCA 위장결혼식 사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세 차례 연행돼 극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 전 총리는 향년 7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는데, 일각에서 이 전 총리의 비교적 이른 죽음이 고문 후유증과 연관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옵니다.
고인은 이른바 '킹 메이커'로서 민주당계 정권이 탄생할 때마다 굵직한 역할들을 수행해 왔습니다.
김대중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 노무현 선대위 기획본부장, 문재인 선대위원장 등을 지냈고,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서 한때 민주당 비주류였던 이 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맡았습니다.
[앵커]
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정치부 양형욱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