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주요 시중은행이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면서 담보인정비율(LTV)을 담합해 오다 적발됐다. 경쟁제한 정보교환 담합행위 금지 규정이 적용된 첫 사례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들 은행에 금지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21일 국민·신한·우리·하나 4개 대형 시중은행들이 내부 정보를 교환하며 부동산 담보대출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한 행위에 대해 법 위반행위 금지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2720억 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은행들의 부동산 담보대출 관련 총 매출액은 6조 8천억 원에 달했다. 은행별로는 하나은행이 2조 1천여억 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국민은행 1조 7천여억 원, 신한은행 1조 5천여억 원, 우리은행 1조 2천여억 원이었다.
은행별 과징금 부과액수는 하나은행이 869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국민은행 697억 원, 신한은행 638억 원, 우리은행 515억 원이었다. 공정위는 매출의 4%를 과징금으로 부과했으며 별도의 감경 혹은 가중 사유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지난 2021년 12월 30일부터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에 새롭게 규정된 경쟁제한적 정보교환 담합행위 금지 규정이 적용된 첫 사례다.
이들 은행들은 부동산 담보대출의 중요한 거래조건인 부동산 담보인정비율에 관한 일체의 정보를 2022년 3월부터 2024년 3월까지 교환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간 은행들은 최소 736건에서 최대 7500건에 이르는 각 은행의 담보인정비율 정보 전체를 수시로 교환했다. 각 은행의 담보인정비율 담당 실무자들은 다른 은행에 요청해 정보를 제공받았는데, 법 위반 가능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정보교환 흔적을 지우기도 했다.
실무자들은 직접 만나서 담보인정비율 정보를 문서(인쇄물) 형태로 건네받았는데 이후 최대 7500개에 이르는 정보를 일일이 엑셀파일에 입력했고 받아온 문서는 파기했다.
은행들은 담당자가 교체되더라도 정보교환이 중단 없이 이뤄지도록 은행별 정보교환 담당자, 교환 방법 등을 정리해 전·후임자 사이에 인수인계까지 하며 담합행위를 이어갔다.
공정위는 이들의 담합이 오랜 기간 지속됐을 것으로 추정하면서도 개정된 공정거래법이 시행된 이후만을 중점적으로 파악했다.
담합을 통해 4개 시중은행들은 담보인정비율을 장기간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창출했다. 은행들은 경쟁 은행의 영업전략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면서 담보인정비율을 통한 경쟁을 회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 은행이 정보교환을 통해 산출한 담보인정비율은 정보교환에 참여하지 않은 은행들과 비교해 낮았다. 2023년 기준 4개 은행의 담보인정비율 평균은 비담합은행에 비해 7.5%p 낮게 형성됐으며 공장, 토지 등 기업대출과 연관성이 큰 비주택 부동산의 담보인정비율은 8.8%p 차이가 났다.
반면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차주들은 부동산 담보대출 시장에서 약 6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4개 대형 시중은행들의 담보인정비율이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됨에 따라 거래은행 선택권이 제한되는 피해를 봤다.
이 때문에 차주들은 원하는 규모의 자금을 충분히 조달하기 어려웠다. 차주가 원하는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추가담보를 제공하거나, 상대적으로 대출금리가 높은 신용대출을 이용해야 하는 등 거래 조건이 악화될 수 있었다.
특히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은 대기업에 비해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아 신용대출을 통한 자금 조달 한계에 봉착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이번 제재에 대해 금융 분야에서 장기간 유지됐던 경쟁제한적 행태를 적발했다고 평가했다. 독과점이 고착화된 분야에 경쟁을 촉진해 금융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기술력 및 사업능력이 충분한 중소기업에게 필요한 자금이 원활하게 공급되도록 해 경제 활력을 제고하는 생산적 금융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공정위는 기대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조치를 통해 중요 거래 조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방법으로 경쟁을 제한한 행위도 제재 대상이 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며 "앞으로도 금융은 물론 각 분야에서 정보를 교환하는 방법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법 위반이 확인될 경우 엄정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동산 담보인정비율은 차주가 제공하는 부동산 담보물의 가치 대비 몇 %까지 은행이 담보대출을 실행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것으로 은행들은 전국 모든 부동산에 대해 소재지 및 종류별로 담보인정비율을 정해놓고 조정하고 있다.
부동산 담보인정비율은 대출가능금액, 대출금리, 대출서비스 수준 등 은행 및 차주 간 담보대출 거래 내용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거래조건으로 담보인정비율이 낮아지면 특정 부동산을 은행에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들게 된다.